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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영 대표] 북돋아주는 연말 보내자
어느덧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할 연말이 다가왔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적잖은 변화가 우리 가까이에 다가왔다. 지역주의에 근거한 정치보다는 이념과 노선에 의거한 정치적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기도 했던 한 해였다. 통합보다는 편가르기, 우리가 힘을 합쳐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보다는 너와 내가 왜 다른가에 좀더 관심을 갖고 있는 정치 세력들의 움직임에 안타까움이 더해지기도 한다.

정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업들은 어떠할까? 대부분의 직장인들 입장에서는 수 조원씩의 흑자를 남겼다는 일부 대기업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딴 나라’ 얘기로 들리는 시절이 요즘이다. 상당수 기업들은 극도의 내수 부진 속에서 울고 있다. 중소 상공인들이야 말해서 뭐하겠는가. 삼성, 포스코, 하이닉스 등 올해 장사를 잘해 돈을 많이 번 기업들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도 그 대표자나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렇듯 기업들의 경영 사정이 나빠지니 당연히 연말 분위기가 뒤숭숭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연말 인사부터 보자. 몇몇 기업들은 외부 발표만 하지 않았지 최고경영자와 임원 인사를 이미 단행했다고 한다. 필자가 아는 한 대기업 임원도 연말 인사에서 옷을 벗었다. 쉰을 갓 넘긴 나이에 허허벌판에 나서는 기분이라던 그는 딸 혼사를 내년 봄으로 잡아둔 터라 마음이 더욱 착잡하다고 했다. 또 다른 대기업 부장은 올 임원 인사에서 임원직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헤드헌터들을 만나 자신의 경력과 능력을 파는데 혈안이 돼 있다. 한해 농사를 지어놓고 배를 두드리는 수확의 계절이라기 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문책의 시즌이 지금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연초에 세웠던 사업 계획이 제대로 달성되지 않았을 때 그 책임이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얘기하면 너무 고상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들릴 것이다.

감원을 하는 회사도 있다. 며칠 전 필자를 찾아온 유명 섬유 회사의 기획실에서 근무중인 김 차장은 감원 소문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이다. 대학 졸업 이후 줄곧 한 회사에서만 근무해온 그는 사내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재무 기획통이라고 한다. 회사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말에 대규모 감원이 단행되며 그 대상에 자신이 포함돼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을 듣게 됐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이 오랫동안 모셔온 임원이 결정한 사항이라고 했다. 배신감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만나게 된 IT 개발 경력 10년 차의 이 과장의 사례도 씁쓸하다. 출산 휴가까지 한 달을 반납하면서 일해온 `똑순이’, `억척 아줌마’ 이 과장은 얼마 전부터 이상한 예감을 받았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상사들이 자신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옆 자리에 있는 동료들은 연일 야근을 해야 할 만큼 일거리가 많은데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자신이 연말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인사는 이익 창출이라는 기업의 생존 본능상 실적과 능력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배제하고 그 반대의 인물을 중용한다는 차원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감원의 경우는 어떠한가. 외환 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란 어려움에 직면해서 단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시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익힌 터라 늘 감원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모든 경영 행위들이 조직의 경쟁력 강화에 긍정적 변화를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칫 떠나는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남아 있는 사람조차도 `나도 언젠가 저 사람들처럼 회사에서 팽을 당하겠지’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면 이는 실패한 경영 행위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와 관련한 한 유명 기업 A사의 사례를 들려주고 싶다. 이 회사는 수년 전 정기 임원 인사 시즌도 아닌 상황에서 임원들을 대거 퇴사시켰다. `임시 직원’의 줄임말이 임원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상무나 전무로 승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임원들도 대상이 됐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한다. 문제는 올해 발생했다. 그 당시 퇴사했던 임원중 일부가 경쟁사로 옮겨갔으며 이들이 A사의 사내 비리를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고 한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에 비수를 꽂은 셈이었다.

이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인사의 원칙성과 명확한 기준의 적용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임원, 직원을 가릴 것 없이 승진, 전환 배치 등의 인사와 관련한 명확한 원칙을 밝히고 구체적인 기준을 잣대로 삼겠다고 투명하게 알리고 그에 따라 집행한다면 백 명중 칠십, 팔십 명 정도는 어떤 인사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상사들의 책임지는 자세다. 어느 전쟁에서도 싸움에 졌을 경우에는 장수가 책임을 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요즘 기업에서는 그 잘못을 부하 직원에게 돌리는 장수들이 많은 것 같다. 왜 기업들이 임원에게 높은 연봉을 지급하고 자동차와 비서를 제공해 주겠는가. 직원들이 내리는 판단과 결정을 최종 보고받고 명석한 판단력을 발휘해서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다소 과격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직원 몇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면피’하려는 임원들은 그들의 연봉을 깎고 직급도 내려야 한다고 본다.

떠나는 사람들, 승진에서 누락된 사람들, 힘없는 부서로 발령이 나 어깨가 축 처진 사람들에 대한 격려와 배려도 필요하다. 세상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신경쓰다 보니 싸움에서 패한 사람에 대한 배려를 찾기가 어려워 진다. 한번 싸움에서 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생의 실패자는 아닌 법이다. 떠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디에 가더라도 회사를 사랑하고 그 회사에 근무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을 기업에도 한번 적용해 보자.

연말을 앞두고 너무 무거운 소리를 많이 한 듯하다. 하지만 인사는 만사이며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맞다면 사람을 아끼고 배려하는 자세가 우리 직장 모든 곳에서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내년도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럴수록 같은 사무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끼리, 또 우리 회사를 떠났던 이들과도 연락을 하면서 훈훈한 연말을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