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경력 관리를 잘 할 수는 없다. 삶에는 예상치 않은 변수가 많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에 빠져들 수도 있다. 자기계발을 하거나 이직을 시도할 여건이 되지 않는 이도 있다. 불안,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커리어 컨설팅을 신청한 사람중 성공 사례를 골라봤다. 돌이켜보면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뒤늦게 파악해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발로 뛰었다는 점이다.
# 경력 공백 극복하기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은 마흔에 무슨 취직을 하겠느냐고 말렸지만 주부로서만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제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A씨(40)는 10년의 공백 기간을 등지고 직업 세계로의 복귀를 희망하고 있었다. 출산 전 외국계 명품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다고 한다. 상담 결과 A씨의 경쟁력은 영어에 있었다. 아이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영어 일기를 쓸 정도로 10년 전의 영어 실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어느 직장에 가더라도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세련미나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10년의 공백을 가진 ‘아줌마’로 느껴지지 않게 했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A씨는 “이력서상의 10년 공백을 보고 누가 뽑아주겠어요?”라고 물었다. 공백이 긴 이들의 공통적 고민이다. 이 경우 필자의 대답은 늘 “무의미한 공백은 없다” 이다. A씨에게 지난 10년간 아르바이트 경험이나 프리랜스 경험이 없는지 되짚어 보라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했는가 하면 벤처 기업의 주문을 받아 영어 브로셔를 만들어준 적도 있다고 했다. 이런 경험을 넣어 이력서를 새로 만드니 이력서도 처음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문제는 어느 회사가 받아줄 것인가였다. 유학원이나 영어 학원은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필자는 우연히 해외 취업사이트에서 외국계 가구회사가 한국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마케팅 경력자를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A씨에게 그 회사의 아시아 본사로 전화를 걸게 했다. 해박한 가구 지식과 명품 시장에 대한 경험이 유창한 영어로 전달됐다. 몇 주만에 그 회사 마케팅 임원이 그를 인터뷰하러 한국에 왔으며 이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A씨의 꾸준한 영어실력 연마와 적극적인 성격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 포인트: 공백 기간에도 경력을 활용한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스 활동을 해두면 써먹을 날이 온다.
# 업종 전환
“저는 어려서부터 컴퓨터 통신에 빠져있었고 최근에는 인터넷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이제라도 제가 좋아하는 인터넷을 이용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B씨(33)는 인터넷 관련 기업으로 업종을 바꿔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회사의 이름값에 더욱 쏠려 자동차 회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이름도 잘 모르는 IT 회사보다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자동차 회사에 입사해주길 바라는 부모님의 생각도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상하 질서가 분명한 대기업의 보수적인 문화에 숨막힘을 느꼈다. 국내에는 경쟁사도 많지 않은 업종이라 이직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필자는 직종 전환보다는 업종 전환이 비교적 쉽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물론 특정 업종에 7-8년 이상 근무하게 되면 타 업종의 기업에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B씨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인터넷 게임이나 인터넷 쇼핑 기업의 전략 기획 부서를 노크하기로 했다. 우선 이력서에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자동차 회사에서 인터넷 판매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경험도 부각시켰다. 또 파워포인트 형식으로 인터넷 비즈니스의 발전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게임과 쇼핑 업종별로 정리한 ‘출사표’도 만들었다. 유명 대기업 기획실 근무 경력만 적힌 이력서만으로는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를 중시하는 인터넷 기업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B씨는 필자가 근무중인 회사의 헤드헌터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쇼핑몰 기업의 기획실로 이직할 수 있었다.
! 포인트: 업종 전환은 자신의 색깔이 굳어지기 이전인 30대 중반 이전에 하자.
# 직종 전환
“영업 부서에서 보낸 직장 생활 10년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사 부서 업무가 제 적성과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제 직종을 바꿀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나라 직장인중 상당수가 자신의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다. 중.고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조차 적성이나 흥미가 무엇이며 어떤 직업과 연계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식품 회사 영업맨으로 잔뼈가 굵은 C씨(42세)는 더 이상 영업 현장에서 일하는데 싫증을 내고 있었다. 매달 실적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경우 받아야 할 압박감, 설사 목표를 달성해도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이 낮은 현실 등으로 지쳐있었다. 그랬던 그가 인사 직종으로 전환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찾아온 것이다.
10년 이상의 영업 경력을 가진 이가 회사를 옮겨 인사 부서에 입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회사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그동안 해온 영업 업무와 새로운 관심분야인 인사업무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C씨에게 사내 연수원 파견 근무를 자원해볼 것을 제안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회사 연수원에서도 영업 경력자중 한 명을 선정해 영업교육 업무를 맡길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도전하면 행운도 찾아오는 법이다. C씨는 요즘 영업 교육 프로그램 설계와 영업 강사 활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활력이 넘친다.
중소 기업에서는 회사내 직무 전환이 쉽지 않다. 이직을 시도할 수 밖에 없다. 30대 중반을 넘길때까지 홍보 업무를 해온 D씨(38)는 작은 홍보대행사로 옮겨 고객사 영업 방법을 배워 아예 작은 의류회사를 차려 발로 뛰는 영업을 하고 있다.
! 포인트: 평생 한 가지 일만 할 수는 없다. 용기를 내어 사내 직무 전환을 신청해보아라.
# 늦깍이 직업세계 진입
외환 위기 이후 직장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구직자들이 많아지면서 공무원과 공기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러다 보니 오랫동안 고시 공부를 하거나 공무원 시험, 공기업 취업 준비를 하다 실패해 30대 나이에 취업 시장을 노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E씨(32)는 사법고시 준비에 20대를 보낸 사람이었다. “제 주변에도 고시에 실패해 취업을 하고 싶지만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해 절망하고 있는 또래들이 많습니다. 괴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봤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더군요.”
사시 준비를 한 사람들에겐 희소식이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 기업들이 법무 부서를 강화하고 있다. 거래처나 제휴업체, 소비자들과의 법적 분쟁의 소지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법률적 검토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그렇지만 기업으로선 몸값 비싼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는데다 법대를 막 졸업한 신입 사원을 뽑으려니 미덥지 않다. 이런 상황을 이용했다. E씨에게 최근 전략적 제휴를 많이 했거나 사업 특성상 이해당사자가 많은 기업들의 명단을 뽑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기업 법무 업무의 중요성과 자신이 회사 법무 분야 강화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요약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보내라고 주문했다. E씨는 이 노력을 한 결과 몇 회사의 인터뷰 제안을 받은 끝에 한 코스닥기업 법무 담당자로 일하게 됐다.
F씨의 케이스는 더욱 극적이다. 그는 남미 유학에서 박사학위 취득에 실패하고 지난해 38세라는 나이에 귀국해 필자를 찾아왔다. 8년간의 유학으로 스페인어 구사 능력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기업 근무 경력도 전무했다. 그러나 F씨가 한 중견 기업 남미지사에서 통역과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곧바로 그 회사의 남미지역 영업과 마케팅에 대한 그만의 의견을 담은 제안서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일주일간 F씨는 놀라운 열정을 보이며 자신의 현지 생활 경험과 인터넷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남미 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한 새로운 영업 제안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 회사의 인사팀장에게 전달된 제안서는 결국 사장에게까지 전달됐다. F씨는 사장 앞에서 제안서를 발표했으며 사장의 기립 박수까지 얻어냈다. 남미지사 요원으로 채용됐다는 소식을 들은 날 필자와 F씨는 함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뻤다.
포인트: 늦게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나만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 위의 글은 박운영 부사장이 중앙일보 6월10일자에 기고한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