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을 놓고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이 이미 언론지상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 만큼 오늘은 경력관리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이번 일을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서울대 입시안의 골자는 결국 수능과 내신을 일정 수준 만족시킨 학생중에서 통합교과형 논술 시험 점수가 높은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죠. '통합교과형'이라는 말 자체가 듣기에 따라서는 교과서에 전혀 나오지 않는 대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사교육 수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도 합니다. 청와대에서 이를 또다른 본고사 형식으로 이해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하는 힘', '의사소통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서울대의 시도는 바람직하며 다른 대학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초.중등 학교의 교육과정 혁신을 위해서라도 이같은 시도는 폄하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입시안을 마치 극소수의 우수한 학생을 골라내기 위한 대학의 편협한 이기주의로 몰아부치는 청와대의 태도나 대학의 자율권 확보 차원에서 청와대와 맞서려는 서울대학교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으나 저는 그 너머에 있는 이번 입시안의 사회적 파급효과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얼마전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발표됐었죠. 신입 사원들의 영어 능력보다 국어능력이 더 요구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말을 잘 쓰고 말하고 또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동료들이나 자기 생각을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동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또한 보고서나 제안서를 작성할 때 상대방이 쉽게 이해하도록 작성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논리적 구성이나 합리적인 결론 도출 등도 부족한 경우가 많죠.
왜 이럴까요? 우리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 요즘 인터넷 댓글을 읽어보시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사람들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인터넷 댓글들은 공격적이면서도 조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근거없는 인신공격과 욕설이 난무하는 사이버 글쓰기 공간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문화의 저급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서울대가 이번에 입시안을 만들면서 이런 점을 고려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대학 입시안 자체가 초.중등 학교 교육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워낙 큰 점을 고려하면 서울대의 의도가 뭐였든지 간에 논술 시험에 비중에 높이는 시도는 환영할 만 합니다. 교육은 한 개인이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때 필요한 자양분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교육이 걱정이시라구요? 논술을 잘 쓸 수 있는 능력은 단시간의 사교육으로는 절대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교육을 통해 배양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논술을 잘 쓰려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그리고 학교에서 어떤 방식으로 배웠는지가 더욱 결정적일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가, 그리고 그 책을 통해 배운 바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그리고 사회 주변의 현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가 등은 학원에서 단 시간에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겠죠. 물론 현재의 학교 교수법도 전면적으로 바뀌어야겠지요. 학교 선생님들도 이젠 일반 교과를 가르치면서도 주입식 교육을 철폐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해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생각하고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도록 교수방법을 바꿔야 하겠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서울대 입시안이 좌절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에서 시행돼야 하며 타 대학으로도 확산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