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영의 샐러리맨 몸값 올리기]
워크홀릭 보다 '가정행복도' 보는 기업 늘어
가정·여가생활은 또 하나의 비즈니스파트너
둘 다 서울에서 직장을 갖고 있는 J씨 부부는 경기도 양평에서 산다. 4년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일가족이 전원 생활을 택했다. 필자의 삶과는 너무 다른 선택을 한 것이 신기해서 찾아가봤다. J씨는 고무신을 신고 집 앞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을 뜯어 손님 맞이 저녁 상에 올렸다.
전교생이 서른명인 분교에 다니는 초등학생 형제는 흙을 밟고 도랑에서 물고기를 잡는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데도 전보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지낼 수 있어서 좋아요, 이쪽으로 이사오세요"라는 조언도 들었다.
수년 전 미국에서 경력개발 전문가 과정에 참여했을 때의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과정 첫날 미국인 교수는 평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발표하라고 했다.
평일에는 아침 7시 집을 나와 밤 10시, 11시에 귀가하고 있으며 주말에도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있다고 했더니 주변이 술렁거렸다. 한 미국인 인사담당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당신한테 가정과 가족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묻기조차 했다. "난 일을 좋아하고 일 자체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또 다른 미국인 경력상담가는 "당신은 소속된 지역 사회를 위해 기여하거나 봉사하는데는 시간을 할애하지 않느냐"는 질문까지 했다.
혹시 경력이나 커리어(career)라는 낱말을 직장 업무와 승진, 이직 등으로 만 한정지어 생각하지 않는지 이 순간 필자 자신과 직장인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물론 경력을 말할 때는 한 개인이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가정생활과 일의 균형은 경력개발에서 갈수록 중요한 이슈가 돼가고 있다.
미국경력개발협회의 여러 보고서들은 가족과 일을 놓고 시간과 정력을 황금 비율로 쪼개어 투자하는 행위를 경력개발의 주요 요소로 꼽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부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며칠 전 한국고용정보원은 중장년층의 경력 설계 프로그램인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Bravo Second Life)'를 발표하면서 프로그램의 가장 앞 머리에 '일과 삶의 균형 잡기'를 배치했다.
워크홀릭을 칭송해온 우리 직장인 문화에 놀랄만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직장 근무 기간이 짧고 자영업이나 1인 기업가로 사는 시간이 길어져 심리적ㆍ물질적 안정이 유난히 강조되는 상황에서 가정과 여가는 정서적 안정, 나아가 물질적 안정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비즈니스 파트너다.
가정 불화로 말미암아 직장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채용시 가정 행복도를 체크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워크홀릭 기미가 있는 독자들은 진짜 그 시간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를 진단해봐야 할 때다.
* 위의 글은 박운영 부사장이 아시아경제신문에 기고한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