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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영 대표] 모니카 하모리 교수가 밝히는 임원 이직의 4가지 착각
한국 대기업들은 대개 지난해 연말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거쳐 2011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진용을 갖췄다. 재벌 그룹의 총수 친정 체제와 가족 경영 체제가 좀더 강화됐다는 인상을 우선 받았다. 총수 일가의 젊은 자제들이 최고경영자(CEO)나 C-레벨의 고위 임원 자리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다. 이 같은 트렌드는 전문 경영인들이 일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얘기로도 해석된다. 중견.중소 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너 패밀리와 전문 경영인들 사이의 긴장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헤드헌팅 회사에는 은밀하게 이직 가능성을 타진하는 고위 임원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더불어 필자가 주목한 것은 외부에서 영입된 임원들의 최고 경영자 승진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많은 기업들이 임원급 인재를 외부에서 수혈해왔지만 정작 이들 가운데에서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임원급 인재의 외부 수혈도 이젠 실무 임원으로만 한정되는 느낌이다. 결국 이런 트렌드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기업 임원들은 자신들의 경력 관리를 놓고 더욱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최근호에서 스페인 IE 비즈니스스쿨의 모니카 하모리(Monika Hamori) 교수는 CEO 및 C-레벨 임원의 경력 관리와 관련한 흥미로운 글을 실었다. 하모리 교수는 CEO 경력 경로에 대한 연구로 경영학계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8년간에 걸쳐 미국 500대 기업과 유럽 500대 기업의 CEO들의 경력 경로 자료, 미국 임원급 전문 헤드헌터 45명과의 인터뷰, IE 비즈니스 스쿨의 이그제큐티브MBA 동문 20여명과의 인터뷰, 금융업 분야의 다국적 기업 임원 1만4천명의 경력 경로 자료 등을 바탕으로 방대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하모리 교수는 임원급 인재들의 경력 관리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네 가지 착각을 들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현직 고위 임원은 물론이며 최고 경영자를 꿈꾸는 여느 직장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만큼 하모리 교수의 연구 내용을 정리해본다.

착각 1. 자주 옮기면 성공한다?
헤드헌터들은 고위 임원들에게 끊임없이 이직을 권유하고 있다. 여러 번의 이직을 통해 고속 승진의 기회를 잡은 사람들의 케이스를 듣다 보면 임원들은 이직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하모리 교수의 연구 결과로는 이처럼 ‘엉덩이가 가벼운’ 임원들보다 동일 회사에서 성장한 임원이 최고 자리까지 가는 확률이 더 높다. 미국과 유럽 기업 최고경영자 1천1명의 케이스를 분석해보면 이들은 평균 3개 기업에서만 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최고 경영자가 되기 까지 딱 두 번의 이직을 했다는 얘기다. 4명중 1명은 한번의 이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CEO뿐만 아니라 임원들에게도 유사한 현상이 보인다. 금융 분야 1만4천명 임원들의 경력 분석에서도 내부 이동을 한 임원들이 이직을 해온 임원들보다 승진 비율과 속도에서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하모리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이 외부 인사보다는 내부 인사를 더 신뢰하는 조직의 속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물며 임원들의 이직을 부추기는 헤드헌터들조차도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한 임원들을 후보자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헤드헌터들은 자주 이직한 임원에 대해서는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에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한 임원에 대해서는 ‘고인 물’로 보기 보다는 높은 신뢰를 유지해온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발견됐다. 물론 예외는 있다. 업계가 너무 좁아서 경쟁사 임원들의 능력과 성향을 파악하기 아주 쉬운 업종에서는 잦은 이직을 이해해주는 기업들이 많다.

하모리 교수의 조언은 우선 임원에 오르기 전까지 이직 횟수를 2회 미만으로 제한하라는 것이다. 가령 첫 회사에서 10년, 그 다음 회사에서 2-3년, 그리고 세번째 회사에서 8년 정도 근무한 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온다는 것이 하모리 교수의 경력경로 분석 결과다. 특히 임원직에 오른 후에는 가급적 이직을 시도하지 말라고 한다.

착각 2. 이직시엔 반드시 직급을 올려야 한다?
내부 이동이나 타 기업으로의 이직시 임원들은 직급을 높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들을 가진 듯 하다. 그러나 실제 수많은 성공 케이스를 보면 수평 이동이 많다. 하모리 교수는 자신의 조사에서 직급이 올라갔거나 혹은 재직 회사보다 규모가 큰 회사로 옮긴 케이스는 전체의 40%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직급 상승과 대형 회사 이직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케이스는 5% 미만이었다. 그렇다면 수평 이동을 한 케이스는 어느 정도일까? 이 역시 40% 정도를 차지했으며 놀랍게도 무려 20%가 하향 이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스스로의 능력을 자신하는 임원들일수록 수평 이동을 굴욕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있지만 수평 이동 이후에는 짧은 시일 이내에 승진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업종을 바꿔 이직할 경우에는 무리하게 직급을 높여 가는 것보다는 수평 이동을 한 경우가 향후 최고 경영자로까지 가는 가능성을 높여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기업의 임원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조진조퇴(早進早退, 일찍 승진할수록 일찍 물러나게 된다는 말)’에 대한 경계가 이 대목에서 제기된다. 하모리 교수는 수직 상승을 지속할 경우에는 장기적 커리어 유지를 하기 힘든 만큼 수평 이동과 수직 이동을 적절히 섞을 것을 주문한다. 최고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동일 조직 내부의 핵심 관리 업무 경험과 현장 경험을 함께 갖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업무 경험을 넓혀줄 수 있는 수평 이동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만약 특정 업무에서만 전문성을 쌓을 경우에는 경력 초기에는 경쟁자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지만 곧바로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높은 직급, 최고 경영자에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권리 등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임원들은 늘 지금의 승진이 다음 단계에 어떤 여파를 몰고 올지를 늘 염두에 두라는 것이 하모리 교수의 어드바이스다.

착각 3.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뛰어난 인재들은 골드만 삭스, 모건 스탠리 같은 이름값이 높은 회사들 사이에서만 이직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같은 일급 회사간 인재 교환 현상은 조직 문화가 비슷하며 인적 자원의 수준도 유사하기 때문에 빈번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다. 하지만 하모리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이런 통념을 깨고 있다. 우선 이런 브랜드 가치가 높은 회사들도 외부 임원들보다는 내부 인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주목할 것은 유명 회사의 임원들중 상당수가 덜 알려졌거나 규모가 작은 회사로 이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츈 기업을 떠난 임원중 64%는 포츈 리스트에 오르지 못한 회사로 이직했다. 이렇게 작은 회사로 이직한 임원들은 기존 회사의 브랜드 가치에 힘입어 새 회사에서 더 높은 직급을 받고 있다.

물론 경력 초기에는 이처럼 이름값이 높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하모리 교수의 분석이다. 기업 인사담당자나 헤드헌터들은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한 개인의 지식 및 능력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착각 4. 업종을 바꾸면 위험하다?
업종이나 직무를 바꾸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임원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시도를 한 임원들이 동일 업종이나 직무를 오래 한 임원들보다 더 성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원 이직의 29%가 전혀 다른 산업으로 옮겨간 경우였으며 또 다른 23%는 동일 산업 내부이긴 하지만 세부 업종이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다시 말해 임원 이직의 절반 이상이 동일 업종을 벗어난 케이스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다른 업종의 임원을 채용하는 것일까? 첫째 경우는 다른 업종의 인적 수준이 더 높다는 보는 업종들 때문이다. 가령 호텔, 레스토랑, 게임 업종은 40% 가량이 전혀 다른 업종에서 임원을 영입하고 있다. 두 번째 경우는 동일 업종내 임원들의 급여가 지나치게 높은 바람에 상대적으로 급여 수준이 낮지만 인적 자원이 우수한 타 업종의 임원을 영입하는 때다. 세 번째는 세일즈 경험이 풍부한 임원들은 업종을 넘나들기 쉽다. 네 번째는 동일 업종 내에서는 인기가 없는 회사들의 경우다. 회사의 평판이 나쁘거나 근무 조건이 열악한 경우에는 동일 업종내 인재들에겐 매력이 없지만 타 업종의 인재들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네 번째 착각과 관련한 하모리 교수의 조언은 자신이 가진 스킬이나 경험중 다른 업종에서 귀하게 여길 속성을 잘 파악하라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징검 다리 역할을 하는 업무를 거칠 것을 하모리 교수는 제안하고 있다. 법무법인의 마케팅 임원을 했던 사람이 비즈니스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우선 컨설팅회사의 마케팅 임원으로 이직한 이후에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경력을 전환한 사례에서 컨설팅 회사 마케팅 임원직이 바로 징검다리다. 헤드헌팅사 임원 경력을 가진 필자의 경우를 놓고 보면 만약 기업 인사담당 임원으로 옮겨가려면 우선 직급이나 연봉을 낮춰서라도 기업내 채용 담당 매니저로 전직한 이후에 인사 임원을 노려야 한다는 얘기다.



* 위의 글은 박운영 부사장이 HR Insight 2011년 2월호 <글로벌 리포트>에 기고한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