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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영 대표] 퇴직연금제 부작용 우려된다

정부에서 2006년부터 퇴직연금제라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공무원이나 교사들처럼 회사가 미리 일정 금액을 퇴직금으로 조성하자는 발상이지요. 현재 퇴직금 제도에서는 기업들이 회계 장부에는 미래에 지급할 퇴직금을 모아놓고 있는 것처럼 써두지만 실제로는 기업 운용자금에서 퇴직금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될 경우 퇴직금 지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정부가 구체적인 법안을 어떻게 만들지는 미지수이지만 벌써부터 우려하는 기업들이 많은 듯 합니다. 특히 만성적인 자금난에다 경기 불황에 처한 중소, 벤처 기업들로서는 새로운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눈치입니다.

어차피 퇴직할 때 내어줄 돈이라면 미리 떼어내어 연금 형식으로 조성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규모의 기업 종사자들과 만나고 있는 저로서는 현 제도의 퇴직금이라도 제대로 받고 있는 직장인들은 행복하다고 생각됩니다. 왜냐고요? 다음 실제 사례를 들어보시죠.

연봉에 퇴직금 포함되는 중소기업 많아
30대 후반의 구직자 A씨는 최근 한 중소기업 B사에 입사했습니다. B사는 대기업 마케팅 과장 출신의 경력을 높이 샀고 A씨도 자신을 받아준 B사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회사의 가능성도 있어 보였습니다. 연봉도 중소기업치고는 꽤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발생했습니다. 당연히 퇴직 시 지급될 줄 알았던 퇴직금이 연봉에 포함돼 매달 분할 지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계산을 해보니 연봉의 7.7% 정도가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된다는 것이죠. A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B사의 모든 직원들이 이런 조건으로 입사했다는 회사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20대 직장인 C씨는 중소 제조업체에 근무한 지 3년이 넘었습니다. 어느날 회사에서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돼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해와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고 합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 별도로 퇴직금을 지급하기 어렵다는 설명까지 뒤따르자 C씨는 그동안 근무해온 3년에 대한 퇴직금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 들어 A씨나 C씨와 같은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기업들은 대개 이런 경우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퇴직금 중간 정산은 1년 단위로 정산을 하는 것이지 위의 사례처럼 입사 직후부터 매달 지급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퇴직금은 근로자가 1년 이상 근무했을 때 발생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입사하자 마자 월급여에 퇴직금을 분할해 지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죠. 법대로라면 A씨가 만약 입사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퇴직한다면 이미 받은 퇴직금을 회사에 돌려줘야 하지요. 또 C씨의 경우에는 그동안 근무해온 3년에 대한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줘야 하는 것이죠.

중소기업, 퇴직금 부담 때문에 파견근로자 쓰기도
그렇다면 기업 경영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중소 무역업체를 운영중인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퇴직금을 연봉에 포함시켜 지급하는 회사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저 역시 그 방식을 도입할까 생각중입니다. 솔직히 퇴직금 지급이 꽤나 부담스럽거든요. 중소기업 입장에서 비교적 연봉이 높은 대기업 출신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서라도 퇴직금을 연봉에 얹어서 지급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 같아요. 직원 입장에서도 어차피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하지 않는 현실에서 연봉을 조금 더 받는 방식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퇴직금 부담 때문에 파견 근로자를 고용했다가 11개월 째 쯤에 그만두게 하는 회사도 많답니다.”

제가 알기로는 수많은 중소, 영세 기업들이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퇴직금 지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그 제도가 탈법. 편법 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퇴직연금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요? 퇴직 연금제 도입의 취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제도 실행 과정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용될지 모르겠습니다. 퇴직금 떼일 걱정이 없는 대기업 근로자들로서는 손해 볼 게 없지만 중소, 영세, 벤처기업 근로자들로서는 그 혜택의 대상이 될지 미지수입니다.

퇴직금 제도 현실적 대안 마련해야
오히려 퇴직 연금에 대한 부담 때문에 파견 근로자와 같은 비정규직 고용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퇴직금 제도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이 같은 중소기업 및 그 종사자들의 현실에 대한 대안도 진지하게 마련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