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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영 대표] 영웅시대 현대·삼성 이렇게 다르다

현대와 삼성그룹의 창업주 일대기를 다룬 TV 드라마가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죠.

드라마 도입 부분에서는 현대건설 회장 출신인 이명박 현 서울시장을 연기한 탤런트 유동근씨가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로 등장하면서 이 시장의 최근 서울시 교통정책과 맞물려 논란을 불러일으킨데 이어 어느 인물과 어느 탤런트의 연기가 실제 인물과 가장 흡사하게 그려졌는지도 관심거리였습니다.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이건희 삼성 회장으로 분한 임채무씨의 연기가 볼만 하더군요.

드라마는 이제 본격적으로 정주영과 이병철이라는 우리 현대 경제사 양대 거목의 기업 창업사를 다룰 태세입니다. 일단 이들이 역사에 남긴 공과에 대한 평가는 잠시 접어둡시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웅 부재 시대에 살면서 성공과 만족하는 삶에 목말라 하는 커리어닥터 독자들에게 좋은 교본이 되리라 생각해요. 또 두 창업자에 대한 이해는 한국 재벌 기업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들의 경쟁사를 좀더 재미있게 관전할 포인트를 짚어보겠습니다.

1. 소작농의 장남과 천석꾼의 막내
두 사람의 경쟁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도 달랐던 성장 환경입니다. 강원도의 가난한 소작농의 장남으로 19세때 네 번째 가출 이후 쌀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정주영은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인물입니다. 우연히 건설회사에 수금하러 갔다가 거금이 오가는 것을 보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던 그였죠. 가난에 대한 깊은 증오감을 가진 그는 건설, 조선, 중공업, 자동차 등 무겁고 큰 업종에서 승부를 걸어야 개인과 국가의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막걸리를 좋아하고 순두부와 김치를 즐겼던 씨름꾼이었죠.

이에 반해 이병철은 경상도 천석꾼의 막내도령으로 도정업으로 사업을 시작해 무역, 식품, 가전, 반도체에서 큰 기업을 키워냈습니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삼성공화국’이 됐다는 비아냥 섞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병철은 삼성을 내실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는 초석을 놓았죠. 고급 요리를 즐겼고 멋내는 옷을 잘 입었으며 명품 골프채 수집에 열광한 골프광으로 알려져있습니다.

2. 상상력이 풍부한 불도저와 논리적인 주판알
성격이 다른 만큼 사업 스타일도 너무도 달랐죠. 이병철은 신중하고 조용하면서 매사를 체계적으로 검증한 뒤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놀거나 즐기는 것도 싫어했다고 하죠. 주판알을 굴려 돈이 된다는 판단이 들면 끝까지 승부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정주영은 이에 반해 정열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열정가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 주위로 모으는 재주도 뛰어났죠. 주판알보다는 몸으로 부딪혀보고 판단하는 공격적인 불도저형입니다. 정주영이 조선 사업을 시작하면서 배를 건조할 도크 하나 없는 상황에서 거북선이 그려진 우리나라 지폐를 외국인에게 보여주면서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에피소드 잘 아시죠? 이에 반해 삼성은 현대의 조선 성공사를 지켜본 뒤 철저한 준비끝에 조선업에 후발 주자로 뛰어들어 삼성중공업이라는 대형 조선소를 만들어냈죠.

3. “이봐, 해봤어?”와 “흉내도 못내게 하라”
정주영은 부하 임직원들을 나무랄 때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직접 실행에 옮겨보지도 않고 사업 타당성을 들어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불호령이 떨어졌다죠. 소떼를 몰고 방북길에 오르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이벤트도 그의 `해봤어 주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신임하면 작은 과오는 눈감아주면서 끝까지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죠. 이병철은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라, 흉내조차도 내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삼성의 1등 주의가 시작된 거죠. 삼성그룹 최고경영자들이 세계적인 석학과의 교류를 게을리 하지 않고 천재급 인재를 뽑는데 인색하지 않는 것도 이런 엘리트주의의 일환입니다. 관상까지 봐가며 사람을 뽑았던 이병철은 인사에 관한 한 비서실 조직을 중심으로 그룹 전체를 중앙집권적으로 관리했습니다.

4. 다른 점만 있는게 아니다.
정주영과 이병철은 실패를 극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병철은 중.일전쟁으로 은행 대출 회수조치가 취해지는 바람에 큰 낙담을 한 바 있으며 6.25 전쟁으로 재산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정주영은 자동차 정비소가 화재로 전소되는 아픔도 겪었고 노후에는 대선 출마로 인해 정권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어려운 시절을 겪은 것은 모두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패를 재기의 기회로 삼아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업을 해보신 분들은 한번의 좌절 이후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현재 이병철이 남긴 삼성은 그 특유의 관리 경영에 힘입어 한국 경제의 대들보가 돼 있습니다. 현대도 한때 어려운 시절을 겪었으나 현대자동차를 기반으로 다시 한번 `왕회장’ 정주영의 도전 정신을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힘으로 나라 경제를 되살리기 힘들 정도로 경제 현상이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재벌 기업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웅이 그리워지는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