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틀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일은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한 번 잘못으로 오해가 깊어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버리는 때도 있다.
마치 여러 조각으로 깨진 화병 같아서 쓸어내고 정리하는 방법 밖에는 별 수가 없다.
그때는 한 번에 모든 의심이 몰려들어 더 이상 마음이 흐르지 않는 서먹한 관계로 응고되거나 단호하게 등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일상의 대부분의 오해는 한 쪽이 먼저 사과를 하면 상대방의 또 다른 사과를 얻어 냄으로써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한다. 말로 만들어진 오해는 말로 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게 간단하게 양분되지는 않는다.
틀어진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그 방법을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상대에게 사과할 마음도 이유도 없다고 느낄 때다.
잘못이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사과는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내 우리의 마음은 내가 사과할 수 없는 100 가지 이유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과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서서히 상대에 대해 단단히 틀어진 이미지를 고착화 시키면서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설혹 마음을 크게 열고 시시비비를 떠나서 사과를 하려 하더라도 사과의 범위가 어디까지 되야 할 지 사과의 방식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 지 몰라 고민하다 이내 적절한 기회를 잃게 될 때도 있다.
적절한 시기를 잃은 사과는 효과가 떨어지고 종종 생뚱 맞은 일이 되곤 한다.
그때는 사과는 했지만 관계는 여전히 서먹하고 공연히 자존심만 잃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먼저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관계회복의 테이블로 불러내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내면과 먼저 협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내면적 협상’이라고 불러도 좋다. 자존심을 세우고, 사과해서는 안되는 100 가지 이유로 무장되어 있거나, 부끄러움 때문에 미적거리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먼저 달래 주어야 한다.
그래야 외면의 나와 내면의 자아가 동일한 노선, 적어도 서로 참아주고 눈감아 줄 수 있는 합의에 먼저 도달하게 된다. 이런 합의점을 가지고 상대를 만나야 일관된 나의 입장을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아마 상대와 관계회복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몰지각한 대응에 맞닥뜨리게 되면 관계 개선 노력을 다 집어 던지고 싶은 분노를 느끼거나 거친 말이 튀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종종 느꼈을 것이다.
좋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만남이 오히려 싸움을 격화 시켜 확실한 결별로 가게 되는 지름길이 되어 버린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 내면의 자아와 먼저 합의하는 협상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면의 자아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내게 하는 강력한 지지자가 되거나 관계회복 과정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음흉한 돌출행위자로서의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은 기준에서 먼저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첫째, 상대방과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먼저 결정하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내 인생에 더 이상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라.
원천 봉쇄가 최선이다. 시간을 버리면서까지 탐탁치 않은 사람들과 만날 필요는 없다.
좋은 사람과 어울려 함께 지내기에도 인생은 짧은 것이다.
그래서 워드하우스 같은 사람들은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 것이 인생의 좋은 원칙이라고 말한다.
올바른 사람은 사과를 바라지 않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악용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매일 만날 수 밖에 없는 가족의 일원이거나 직장의 상사나 동료가 되면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때는 내 내면의 자아를 달래두어 이 원칙을 잊지 않도록 다독거려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좋다.
-피할 수 없는 관계라면 나쁜 관계로 에너지를 소진할 이유가 없다. 애를 써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좋은 관계란 최대한 자연스러운 생활이 서로 유지될 수 있도록 관계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특별한 이해관계를 위해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지는 마라. 안과 밖의 불일치가 심한 가식의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다.
-예의를 지켜라. 예의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적절한 간격이다. 그리고 예의는 생각보다 훨씬 힘이 세다.
내용은 사라지고 예의 없는 태도만 남아 악화된 관계를 나는 수없이 보았다.
둘째, 일단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사람으로 분류되면 내면의 자아가 만족할 수 있는 관계 회복 방정식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았다.
-사과할 때는 타이밍을 놓치지 마라. 서로 친하고 일시적으로 격한 감정이 일어 불쾌한 언어를 교환하게 되었다면, 화가 삭아드는 즉시 사과하는 것이 좋다. 분란의 내용이 무엇이든 화를 내고 분노를 자제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따라서 화가 가라앉으면 그 대목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것이 상대의 사과를 이끌어 내는 훌륭한 상호 작용의 해법이다.
그러나 화를 낸 것이 그 순간 꼭 필요한 전략이거나 강력한 자기 방어였다면 서로에게 약간의 생각을 할 수 있는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침묵은 훌륭한 저항이다.
따라서 상대를 압박하여 내 입장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는 완강한 침묵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마라.
상사에게라면 하루면 좋다. 동료에게라면 약간 더 길어도 좋다.
그가 사과해 올 수 도 있을 것이니까. 그러나 너무 오래 가지는 마라.
-사과의 범위, 사과의 방식, 그리고 사과의 결과를 미리 추정해 두는 것이 좋다.
기분 좋은 복원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세부 기준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우선 어디까지 사과할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사과의 범위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사과해서는 안되는 사안까지 사과함으로써 불쾌한 일이 공공연히 재발되는 경우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미숙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부 사과하는 것이 좋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자신의 주장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사과 하러 가서 그 대목을 다시 강조하지 마라.
제 2의 전투로 비화하는 사과의 장면을 나는 수없이 보아 왔다.
사과만 해라. 그러면 상대도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다시 그 대목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사과의 방식 역시 중요하다. 연인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과 오해라면 적절한 의식이 필요하다.
꽃이나 편지 혹은 기분 좋은 이벤트가 좋다.
직장 상사와 틀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라면 얼굴을 보고 서로 맞대면해서 사과하는 것이 좋다.
상사의 사무실로 찾아 가라.
적당히 넘어가지 말고 확실하게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것이 좋다.
동료라면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한 잔 하는 방식이 무난하다.
일단 머리 속으로 추정한 사과의 범위와 방식이 정해지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해
음미해 보는 것이 좋다. 잊지 마라.
우리의 목표는 틀어진 관계를 조율하여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으면 다시 사과의 범위와 방식을 수정하여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특히 직장에서는 상사와의 관계에서 생긴 불편한 관계를 절대로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대로 방치하면 눈이 쌓이듯 무거워 진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던 기둥과 대들보가 무너지고 지붕이 내려앉게 되어있다.
회복될 수 없는 관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상사는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상사는 자신이 받은 모욕을 반드시 보복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 낸 상황을 그때그때 털어내고 치워두어야 한다.
출처 : 구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