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몸의 관계에서 주제는 '누가 주인인가'하는 점입니다.
뇌가 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그러한가. 뇌는 몸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인가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요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일이 꼽아보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만큼 많은 요건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들라면 뭐가 될까요. 뇌입니다. 뇌는 보이지 않는 두개골 속에 조용히 들어 있어서인지, 뇌가 우리의 생존과 생활에 기본을 이룬다는 사실을 대체로 잊고 지내죠. 뇌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뇌가 기능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웃고 화내고 우울하고 즐겁고 슬픈 모든 감정, 보고 듣고 말하고 읽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모든 사고 작용, 먹고 소화시키고 움직이고 잠자는 모든 행동이 뇌의 기능입니다. 그러니 뇌가 기능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죠.
뇌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바깥에서 오는 정보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깥'이란 몸을 둘러싼 외부 환경뿐 아니라 내장을 비롯한 몸 속의 다른 기관들도 포함합니다. 내장도 뇌에서 보면 바깥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곳에서, 모든 세포에서 뇌에 정보를 보냅니다. 눈, 코, 입, 귀, 피부뿐 아니라 내장, 그리고 내장과 내장 사이 등 몸의 어느 구석도 뇌와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 연결이 있음으로 해서 뇌가 작업을 합니다. 연결을 차단하면 뇌는 정보를 받지 못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뇌는 왜 정보를 필요로 할까요?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면 식욕이 일고, 피부에 뜨거운 열기가 닿으면 얼른 몸을 피합니다. 정보는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정보에 반응하여 행동을 취하기 위해 뇌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단순하게 보면 정보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정보가 들어와서 나가기까지 뇌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요.
뇌에 어떤 정보를 주는가, 뇌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 두 가지에 의해 우리의 건강과 성격과 재능 같은 개별적 특성들이 만들어집니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전에는 흔히 수학 문제 잘 풀고 기억 잘 하는 것이 머리가 좋은 것인 줄 알았죠. 저는 어릴 때 운 좋게 공부를 잘 했는데, 학교 친구들 중에는 공부는 못해도 몸집이 크고 운동을 잘 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짱'인 그 아이들은 때로 저를 도와주기도 했는데, 저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쟤들은 머리는 안 좋아도 마음은 착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니, 게다가 뇌 연구를 하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씀씀이가 좋은 것도 머리가 좋은 것이고, 운동을 잘 하는 것도 머리가 좋아서임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야구 선수 박찬호나 이승엽, 골프 선수 박세리,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같은 사람들은 머리가 매우 뛰어난 이들입니다. 그들의 손이나 발이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손과 발을 잘 써야 하지만, 그렇게 하게 하는 머리가 좋은 것입니다.
피아노 연주자나 한석봉의 어머니 같은 이들이 보이는 능숙함은 그러니까 손에 밴 것이라기보다 뇌에 뱄다고 하는 표현이 맞습니다. 이는 조금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손가락을 몇 개 잃어도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지만, 뇌를 다치면 열 손가락이 멀쩡해도 피아노를 칠 수 없습니다. 실제 네 개의 손가락만으로 감동적인 연주를 펼치는 피아니스트가 있지 않습니까.
운동, 연주, 노래, 연기, 그림 같은 특정한 재능에 한하여 머리의 좋고 나쁨을 따질 일도 전혀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숨 쉬고 움직이는 것만도 뇌의 놀라운 기능입니다. 걷는 동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뇌에서 지시하는 사항은 경이로울 만큼 복잡하고 빠르고 정확합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우리는 모두 이렇게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 아기 시절에 굉장히 힘들게 연습하며 실력을 쌓아야 했죠.
우리 실험실에서는 주로 생쥐를 통해 뇌기능을 연구하는데, 최근의 한 실험에서 흥미로운 관찰을 했습니다. 생쥐에게 미로에서 길을 찾아 목표지점에 이르게 하는 실험인데, 대부분의 생쥐들은 실험을 거듭할수록 미로에서 헤매는 시간이 줄어들고 목표지점에 차츰 빨리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 미로 찾기에 영 재주가 없는 한 생쥐가 운동 학습을 하는 실험에서는 단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 생쥐는 운동뇌가 뛰어난 녀석이었던 것이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IQ만 따졌는데 이후 다중지능 이론이 나오고 EQ, MQ, SQ 같은 지능 개념이 등장하면서 좋은 머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뇌의 여러 기능이 떨어진다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도 마음이 유독 착하다면 그에 해당하는 머리가 뛰어난 것입니다.
유전은 설계자, 환경은 시공자
숨 쉬고 걷는 것은 매우 대단한 기능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해내는 뇌는 유전자를 근거로 하여 만들어집니다. 유전자는 우리 몸의 기본 구조와 기능을 짜 넣는 설계도면입니다. 뇌도 유전자의 기본 설계에 따라 만들어지지만 그 위에 환경과 경험이 작용하면서 다양성이 생겨납니다. 똑같은 설계도를 갖고도 부실업자가 시공하면 건물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같은 유전자가 주어져도 환경과 경험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뇌가 될 수 있습니다.
신생아 때 400그램 정도인 뇌가 성인이 되면 1,400그램까지 커지는데, 그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란 엄청난 것입니다. 유아기, 청소년기, 성인기의 뇌를 MRI로 찍어보면 시기별로 뇌의 활동 양상이 다릅니다. 크기가 점점 커질 뿐 아니라 구조와 기능 자체에 차이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변화는 설계도면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환경과 경험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환경과 경험은 태어나기 이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작용합니다. 그래서 태교가 중요하죠.
성장기를 거치면서 뇌는 계속 변화합니다. 특히 사춘기의 뇌는 성인의 뇌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은 사람뿐 아니라 쥐나 원숭이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서양에서는 사춘기 아이들을 외계인이라고도 하는데, 전전두엽이 부풀어오를 만큼 활발히 변화하는 십대의 뇌는 활동 양상이 성인과 많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인들은 보통 십대 아이들이 머리가 다 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좌충우돌을 반항으로 해석하고 화를 냅니다. 그러나 십대의 시기에 뇌는 그렇게 작용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십대의 뇌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차츰 성인의 뇌로 성장해 갑니다. 경험과 학습이란 한 인간이 겪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 몸에 신경이 닿지 않은 곳이 없듯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뇌는 경험과 학습을 위한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발췌출처 : 뇌를 알면 행복이 보인다(이승헌, 신희섭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