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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30대 신화는 늦지 않다

`입사 4년 10개월 만에 상무가 된 32세의 여자`

이렇게 신문과 잡지는 떠들고 있었다. 매스컴은 나에게 `신데렐라`라는 낱말을 쓰고 있었다.
업계의 신데렐라 탄생이니 대기업의 신데렐라 입장이라느니 해가면서 말이다.

내가 한라에 입사한 지는 4년 10개월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물론 10년이라고 쳐도 고속승진인 것은 인정한다. 대기업에서는 이런 승진 케이스가 흔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여자이고 고작 30대이다.

그 10년간의 과정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고생이 비해 어쩌면 보잘것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10년 동안의 땀과 눈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실패와 시련의 참담함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 고통의 세월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평생 흘린 눈물을 그 10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세월 안에 다 쏟아부었다. 땀도 남 못지않게 흘렸다. 노력하고 애썼고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어 했고 그래서 뼈를 깍는 고통 속에서 얻은 눈물나는 성공이었다. 그런데 그저 한 순간에 재투성이 소녀가 유리구두로 바꿔 신고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다루는 데는 불만이 많았다.

삶이란 과정인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은, 그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삶의 질곡을 넘어서야 맛볼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내가 성공이라는 것을 얻었다면 나의 성공 또한 과정의 결과였다.

내가 신데렐라처럼 다뤄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이유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젊은 사람들과 대중들의 의식 말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 '한 건만 잘하면' 아니면 `떼돈을 한꺼번에' `성공을 한꺼번에' 하는 이런 의식들이 팽배해 있다. 그런 의식들을 부정하면서도 동경하는 젊은이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나는 그게 싫었다. 한 건만, 한 탕만... 그런 한탕주의 의식이 제일 싫다.
노력한 만큼, 고생한 만큼, 능력만큼, 성실한 대가만큼... 그만큼만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의 고속승진은 결코 유리구두의 성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잠을 줄이며 한밤중까지 근무하고 휴일을 찾아 놀아본 지가 까마득했던, 휴식과 오락조차도 일로 풀었던 결과였다.

한라에 들어가던 그때, 나는 생의 실패자였다. 철저하게 깨진 모습으로 귀국해야만 했던 생의 비참한 실패자, 인생 항해의 조난자가 바로 나였다.

나는 미국에서 첫직장에 실패했다. 잘못된 선택이었고 그래서 다른 직장을 구해 서둘러 그곳에서 나와야 했다. 두 번째 직장에서 처음에는 그런 대로 잘 해 나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실패했다. 외부 영업에는 성공했으나 내부 영업에서 완전히 실패했던 것이다. 그래서 해고당했다. 세 번째 직장을 구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오래 일하지 못했다.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이 그 원인이었다. 직장을 세 번이나 옮겨다니는 동안 남편과의 끊임없는 불화가 일어났다. 상습적인 구타에 나는 지쳐갔지만 아이는 잘도 커갔다.

뭔가 인생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나는 서울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아들과 나의 편도 승차권(Oneway Ticket)이었다. 한국에 온 후, 무작정 직장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에 한라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선택은 하나였다. 더 뭐가 있는가. 여기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나는 끝이었다. 나는 이 사회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해, 그래서 더 이상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내 자리를 굳혀야 했다.

나는 그때 생의 전쟁터에서 나만 고립된 것 같았던 전사, 적들이 다 주위를 포위한 것만 같았던 위급한 전사였다. 그리고 나를 구해줄 밧줄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인생의 바닷속 조난자였다.

그래서 맹렬히 일했다. 끊임없이 도전해야 살아남기에 도전했고, 장애물을 헤쳐야 나아가기에 장애물을 걷어내며 달렸다.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다는 절박감, 이제 더 이상 선택은 없다는 위기감이 나를 질주하도록 만들었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 나 자신밖에 없었다.
거대한 정글 속 사회에서 길을 잃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은...

그래서 악착같이 일했다. 그 결과 30대에 상무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신데렐라도 아니고 행운의 여자도 아니었다.

고속승진한 32세의 여자 상무를 만나러 온 취재기자들에게 그런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말을 받았다.

“누구나 열심히 살아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거죠? 그렇게 살면 10년 후에 누구나 임원이 된다는 얘깁니까?

나의 대답은 이렇다.
나는 신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니고 더구나 성공학 강사도 아니므로 이렇게 하면 꼭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가능성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다. 능력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것을 기억해주기 바랄 뿐이다.

30년 넘게 산 것은 많이 산 게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불행도 겪었고, 차가운 바람을 여러 번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위안을 삼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일을 잘 넘길 것이고 이 일을 겪은 후에
나는 더 성장해 있을 것이므로...

나는 태풍 속에서도 의연한 풀꽃이 되고 싶지, 바람 없는 온실은 재미가 없다.

< 출처 : 이은정, '30대 신화는 늦지 않다'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