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느림을 확보하라.
맛을 음미하려면 천천히 느리게 먹어야 합니다. 제대로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끼려면 천천히 느리게 해야 합니다. 물론 빌 게이츠는 그의 책"생각의 속도 "에서 2000년대가 속도의 시대임을 천명했습니다. 디지털 경쟁은 속도경쟁이고, 속도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속도는 디지털 세상의 생존무기입니다.
하지만 한 번 더 들여다보면 그렇게 속도를 내는 진짜 이유는 '느림'을 확보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확보된 느림속에서 오감을 열고 한 단계 높은 가치를 꿈꾸며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해야 진짜 승부가 납니다. 느림을 확보하지 못하는 속도는 진정한 속도가 아니라 조급증의 발로일 따름입니다. 테제베나 이체 혹은 X-2000같은 초고속열차를 타고 느끼듯, 속도 안에서 느림을 구가하십시오. 속도 안에서 구가하는 느림, 그 느림을 통해 오감을 활짝 열고 새로운 가치를 잉태하며 산출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감성 리더가 갖추어야 할 제1의 덕목입니다.
2. 상상력으로 승부하라.
앞서 느림 속에서 오감을 열고 한 단계 높은 가치를 꿈꾸며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해야 진짜 승부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누군들 상상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상상력으로 승부를 낼 수 있단 말일까요? 히말라야의 8,000미터급 봉우리에 오르려면 베이스캠프를 몇 미터에 치는지 아십니까? 최소 5,500미터에서 6,000미터 정도 됩니다.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백두산의 높이가 2,744미터입니다. 백두산도 무지 높다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백두산의 두 배 높이를 더해도 정작 히말라야 8,000미터급 봉우리의 베이스캠프에도 닿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8,000미터는 한반도 안에 갇힌 사람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높이임에 틀림없습니다. 결국 남들이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상의 베이스캠프를 치면 그 자체로 승부가 나버립니다. 더 이상 지구력으로 승부할 때가 아닙니다. 상상력으로 승부할 때입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려면 오감을 차별화하고 극대화해야 합니다. 오감을 활짝 열고 상상의 베이스캠프를 치십시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상상의 베이스캠프를 치십시오. 그러면 이미 거기서 승부가 납니다.
3. 차이를 드러내라.
아날로그 시대에는 일사불란함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한 줄로 세워지고 차이나지 않게 골라내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차별의 근거였고 '왕따'의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차이가 곧 가치입니다. 차이야말로 대접받고 존중받을 근거입니다. 차이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은 도태되고 맙니다. 차이를 드러낼 수 있을 때만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차이는 그저 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지문, 자기 정체성에 충실한 것이 차이의 근원입니다. 거기서 자기만의 진정한 파워가 나옵니다. 본래 모두 다른 것입니다. 사람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쓸데없이 줄 세우지 마십시오. 가능한 한 일률적인 요소를 없애십시오. 난장판처럼 여겨져도 좋습니다.
규격과 틀을 과감히 깨야 합니다. 차이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차이를 즐기십시오. 리더는 그 차이를 즐기고 주도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차이를 이끄십시오. 차이를 드러내십시오. 차이가 승부처고 새로운 가치의 창출처입니다. 그러니 남 따라 하지 말고 애써 시대를 좇지도 마십시오. 당신 자신이 곧 시대임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당신의 차이가 곧 당신의 시대를 만듭니다.
4. 느낌을 존중하라.
조직의 회의에서는 맵핑 아이덜러지(mapping ideology)를 그만두십시오. 실컷 의견을 들은 다음 조직의 정책·방침 등을 들먹이며 참신한 의견의 알곡을 쭉정이와 함께 버려버리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마십시오. 고정된 이데올로기로 자유로운 생각을 거세하지 마십시오. 또한 맵핑 머니(mapping money)도 피해야 합니다. 의견을 듣고 나서 "그렇게 하면 돈 돼냐?"는 식으로 핀잔주지 마십시오. 돈이 될지 안 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디지털 조직의 회의에서는 맵핑 아이덜러지나 맵핑 머니가 아니라 맵핑 센스(mapping sense)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차이를 드러내고 새로운 시장 돌파의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면 그것이 조직의 방침에 어긋나는 것일지라도 또 당장 돈 되기 어려워 보인다 해도 리더는 그것을 일단은 체크하고 저장할 수 있는 감각을 갖춰야 합니다.
맵핑 센스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의 목록을 작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조직 전체의 맵핑 체인지(mapping change)도 가능해집니다. 변화를 따라가는 조직이 아니라 변화를 창출하는 조직의 밑그림이 거기서 나옵니다. 그러니 사소한 느낌, 감각, 감성일지라도 그것을 존중하십시오. 느낌을 존중하는 조직이 결국 생존하고 이깁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전 소니 회장 오가 노리오의 대담집 제목이 "감성의 승리"였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디지털 시대는 느낌, 감각, 감성의 시대입니다. 고감성, 하이터치가 고부각가치를 낳는 감성시장, 마음산업의 시대입니다. 그러니 느낌을 존중하십시오. "느낌, 감각, 감성이 결국 이깁니다."
5. 낯선 것과의 마주침을 즐겨라.
스스로를 낯설게 하고 그 낯선 것과의 마주침을 즐겨야 우리 안의 느낌과 감성 그리고 감각의 돌기들이 되살아납니다. 그러니 그 나물의 그 반찬을 피하십시오. 다른 것 혹은 잡종들과 접하십시오. 익숙한 것, 친숙한 사람과의 만남이 자칫 나를 병들게 합니다. 나와 다른 것들의 만남이 나를 새롭게 하고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은 만남으로 자랍니다. 낯선 이들을 만나고 낯선 곳을 여행하십시오. 낯선 것들이 문제를 던지게 하고 동시에 낯선 것들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십시오. 우리의 느낌, 감각, 감성들은 충분히 그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6. 감각의 레퍼런스를 키워라.
레퍼런스 두께가 곧 나의 두께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레퍼런스 두께만큼만 세상을 보고 느끼며 삽니다. 똑같은 영화를 보아도 받아들이는 것은 천차만별입니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레퍼런스가 다르기 때문이죠. 똑같은 책을 봐도 느끼는 것은 다 다릅니다. 역시 각자의 레퍼런스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레퍼런스가 영화를 보는 것이고,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의 레퍼런스가 책을 읽는 것이죠. 레퍼런스란 책 뒤의 참고문헌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책은 그 참고문헌만큼만 책입니다. 와인도 마셔 버릇한 사람이 그 맛을 알고, 차도 타본 사람이 차이를 압니다. 경험해본 감각의 기억은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경험해 본 감각의 기억들이 쌓이면 레퍼런스가 됩니다. 레퍼런스가 두툼해야 세상을 다양하게 다면적으로, 또 입체적으로 제대로 맛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느낌, 감성, 감각의 레퍼런스를 키워내십시오. 감각의 돌기를 모두 열고 날마다 자신의 레퍼런스를 새롭게 축적하십시오. 자기 삶의 레퍼런스를 키우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남들 사는 것을 잘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책 보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공연 보듯 우리 삶 도처에 있는 텍스트로서의 환경을 잘 보고 듣고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는 여행하며 체험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행은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스스로 낯선 것과 직접 마주하는 배낭여행, 자유여행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남들 사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시장에 나가보십시오.
아니 지하철이라도 타보십시오. 그리고 그저 졸거나 책 읽거나 신문만 볼 것이 아니라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정작 그들의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지하철은 거대한 욕망의 통조림이니깐요. 그리고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더 많이 세상을 느껴보십시오. 또 여행하며 직접 체험해 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레퍼런스 두께만큼 우리는 세상을 더 많이 만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7. 감각의 놀이터에서 변화와 놀자.
변화는 좇을 대상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놀 대상입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는 것은 가랑이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도 가능할 수 있지만, 변화를 좇는 것은 마치 그림자를 좇는 것과 같아서 피곤하고 괴롭기만 할 뿐 결코 그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변화는 그래서 함께 어울려 놀 때, 내 것이 됩니다. 변화와 놀려면 스스로 자기 삶에 감각의 놀이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술판 거나하게 놀아야 노는 게 아닙니다. 목청 돋워 노래를 불러야만 노는 게 아닙니다. 진짜 노는 것은 자기 감각에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자기 오감을 옥죄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느낌, 감각, 감성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죠. 결국 감각의 놀이터에서 변화와 함께 놀 수 있는 사람이 시장을 점령하고 미래를 이끕니다. 여러분이 아니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