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이 구성원의 열정을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해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열정이 조직의 성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목적지향적인 열정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열정을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열정 관리의 포인트를 여러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열정은 이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이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얼마 전 방한한 세계적인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강연에서 '시스템이나 전략보다는 사람과 열정이 초우량기업의 조건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고 기업의 생명력은 개인의 열정으로부터 파생된 창조성과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열정 경영(The Passion Plan at Work)'이라는 책을 쓴 리처드 창 역시 조직의 성공과 실패는 열정이 넘치는 구성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높은 기술력이나 풍부한 자본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활용하는 인재와 그의 열정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열정도 관리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인재 채용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일에 대한 열정을 본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열정이 없다면 애플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오테크 산업의 선두 기업인 제너테크 또한 엄격한 스크린 과정을 통해 지원자에게 암과 투쟁하는 환자를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가를 눈 여겨 본다고 한다.
해외 기업들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도 개인의 열정을 채용의 중요한 요건으로 간주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연구팀이 올해 국내 112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채용시 인재가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으로 출신 학교나 학점보다는 열정과 도전 정신을 꼽는다고 한다.
그러나 열정을 가진 인재를 무조건 많이 채용한다고 해서 조직 전체가 열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열정지수(Passion Quotient, 조직의 전반적인 열정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열정을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선진 기업들은 구성원의 열정을 단순히 개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열정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것일까? 여러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조직의 열정 지수를 높이기 위한 열정 관리 포인트를 찾아 보자.
■ 열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 열정의 발견
회사는 구성원의 열정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잠재되어 있는 열정을 어떻게 깨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열정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여 열정을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갖는 특성인양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개인마다 열정을 갖는 분야가 다를 뿐이지, 누구에게나 열정은 있기 마련이다.
디즈니의 전 CEO인 마이클 아이스너는 구성원이 갖고 있는 열정과 창의력에 대한 믿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누구든지 자신의 내면에 깊이 숨겨진 새로운 창조의 원천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열정의 원천을 건드릴 때, 그 힘은 기업의 성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숨겨진 열정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구성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열정을 발휘하게 된다. 반대로 목표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의 반복은 구성원의 열정을 죽일 수 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 왕은 신을 모욕한 벌로 하데스의 가파른 언덕 위로 돌을 밀고 올라갔다가 다시 굴러 내리게 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형벌을 받는다. 무의미한 일의 반복이 그리스 판 지옥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던 것처럼 목표가 없는 일상의 반복은 구성원들의 의욕을 꺾고 숨겨진 열정을 사장(死藏)시키고 만다.
화장품, 보석 등을 생산·판매하는 에이본은 분명한 목표 제시로 구성원의 숨은 열정을 이끌어 내고 있다. 공장 내부 곳곳에 붙은 각종 지표들은 목표 대비 현재의 달성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구성원들은 제시된 목표와 자신이 이루어낸 업적을 확인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의 열정을 쏟아 내게끔 자극을 받는 것이다.
열정을 깨우는 다른 방법 중 하나는 교육·훈련을 통해 지식을 쌓아 가게 하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업무나 분야에 대해 열정을 갖기란 매우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열정은 감정의 한 형태이지만 지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제대로 발현될 수가 없다. '크게 생각하면 크게 이룬다'의 저자인 데이비드 슈워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열정을 갖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떠한 것에 대해 열정을 갖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잘 알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잘 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 진정한 열정은 자발적인 것이다 : 열정의 질(Quality) 제고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열정의 질을 높이는 것이 두 번째 관리 포인트이다. 흔히 열정적으로 일한다고 하면 야근을 많이 하고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집중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열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속에 그러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시간에 쫓겨 일하는 모습 속에서는 진정한 열정을 발견할 수 없다. 기계적 순종(Compliance)이 아닌 자발적 헌신(Commitment)을 통해 열정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몇 년 전 국내 모 광고 기획사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P세대'라고 지칭한 바 있다. 참여(Participation), 열정(Passion), 잠재된 힘(Potential power)이라는 영어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참여를 통해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이는 결국 조직의 힘으로 연결된다는 얘기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한일 월드컵과 촛불집회 등 정치·사회적 이슈 속에서 참여가 이끌어 낸 자발적인 열정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 역시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어 열정적으로 업무에 몰입하도록 적극 관리해 나가야 한다. 자발성을 불러 일으키는 동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은 구성원들에게 일과 관련하여 자율성을 주는 것이다.
디즈니 인스티튜트가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뤄지는 결정들은 직원들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회사는 그들이 현장에서 내리는 결정을 신뢰한다. 인스티튜트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고객들이 마술 같은 순간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인데, 그에 대해서는 미리 정해진 원칙이 없다. 그러한 순간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업무에 대한 자율성을 가진 직원들의 몫인 것이다.
■ 열정은 전염성이 강하다 : 열정의 전파
열정이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조직 내부에 지속적으로 전파되도록 하는 것이 조직의 열정관리에 있어 필요하다. 처음에는 열정으로 시작한 기업들이 시간이 가고 규모가 커질수록 처음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관료주의에 빠져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또한 뛰어난 리더에 의해 열정적으로 움직이던 조직이 그 리더가 떠나고 난 뒤, 갑작스럽게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이는 모두 열정이 조직 전체로 전파되지 못하고 열정의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열정에 대한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는 커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졌을 뿐 아니라 자신의 열정을 구성원들에게 전파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인적인 만남이나 메모, 이메일,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끊임없이 구성원들과 의사소통하면서 커피에 대한 열정을 조직 전체에 확산시켰다. '스타벅스에서 파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경험이다.'라는 말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고객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열정으로 가득 찬 조직 구성원들의 서비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설립 초기부터 이어져왔던 조직의 정신과 전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열정을 전파시켜 나가는 기업도 있다. 컴퓨터 제조 업체인 게이트웨이는 설립 당시 직원들의 인터뷰를 담은 비디오 영상물을 만들어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보도록 하고 있다. '게이트웨이의 정신 : 게이트웨이는 왜 특별한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비디오에는 초기 게이트웨이의 성격을 규정했던 '실험과 혁신과 고객에 대한 책임감의 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다. 직원들은 이 비디오를 보고, 소규모 도시에서 출발해 현재 최첨단 다국적 기업이 된 게이트웨이의 열정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 열정에도 방향성이 필요하다 : 열정의 연계
열정은 회사의 사명과 목적에 따른 분명한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방향성 없는 열정은 오히려 위험하다. 조직의 핵심 가치와 연계된 열정만이 경쟁사와 차별화된 핵심역량이 될 수 있으며 우수한 기업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관성있는 원칙에 바탕을 둔 실천이 중요하다. 핵심가치와 유리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No'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며 조직 내 모든 제도는 핵심 가치에 바탕을 두고 수립되어야 한다.
GE의 잭 웰치는 누구보다 개인의 열정과 조직의 핵심가치에 관심이 많은 CEO였다. 그는 경영 회의에서 높은 성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경영자들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조직의 핵심가치와 맞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할지라도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와 연계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최고 경영자의 이러한 원칙은 구성원들의 열정이 조직의 핵심 가치를 향해 정렬되도록 강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 고객이 선호하는 공급자'를 지향하는 3M은 신입 사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당신에게는 차이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열정이 있습니까?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도전을 추구하는 사람, 여러분은 세가지 모두가 되고… 3M 팀원의 일원으로서 욕구 충족에 대한 많은 기회를 활용하도록 요구받을 것입니다."
3M에서는 '혁신'이라는 핵심 가치에 부합될 경우에 한해, 새로운 시도에 대한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우리가 잘 알듯이, 근무 시간 중 15%를 부여된 자기 업무 이외의 창조적인 일에 사용하도록 한다든지, 최근 1년 이내에 개발된 신제품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10%에 도달해야 한다는 등과 같은 각종 원칙들이 있다. 이 모든 제도들은 구성원의 열정을 일관성있게 조직의 핵심 가치와 연결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 일에 대한 열정을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 열정의 확장
구성원의 열정이 지속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일에 대한 열정이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직업은 있어도 평생 직장은 없다.'라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20-30대 남녀 직장인과 대학생 4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84.6%가 '평생 직장보다 평생 직업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열정도 있지만 회사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적 헌신을 보이지 않는다면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체화될 수 없다. 리더십 전문가인 카첸바흐는 직원들이 업무에 쏟는 자신의 노력에 비해 회사가 주는 것, 즉 서로 주고 받는 것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끼면 감정적 헌신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개인의 열정을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정에 대한 인정과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보면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用, 女爲悅己者容)'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대상을 위해 열정을 다 한다는 뜻이다. 이는 기업의 구성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때 자신의 가치를 느끼면서 최선을 다한다.
KFC, 피자헛, 타코벨을 거느린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 체인 기업인 얌!은 즉각적인 인정과 보상을 통해 개인의 열정을 회사에 대한 충성도로 확장시키고 있다. 외식 업체의 특성상 종업원들의 고객에 대한 열정적인 태도는 성과로 직결된다. 얌!은 고객 지향적인 열정을 가진 인재를 뽑는데 애를 쓸 뿐만 아니라 이들이 고객에게 보인 훌륭한 태도를 즉각적으로 인정하고 보상함으로써 구성원의 고객을 향한 열정을 강화한다. 또한 직원들 스스로가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있고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도록 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갖게 만든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높기로 유명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서로를 칭찬하고 인정하는 문화를 통해 구성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이 자부심은 곧 낮은 이직률로 돌아온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COO인 콜린 바레트는 "직원들이 잘한 일을 인정해 주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조직 문화이며 이것이 사우스웨스트의 동기 부여 방식이자 인재 유지의 핵심이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 목적 지향적인 열정 관리가 필요
열정은 뭔가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그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열정은 관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열정을 격렬하게 흐르는 강물에 비유한 리처드 창은 목적 지향적인 열정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강물을 그냥 흐르도록 내버려두면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댐과 수로를 만들어서 강력한 물살을 조절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원하는 시기와 장소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열정적인 조직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열정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조직의 열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