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의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유용하면서도
가장 뒤떨어져 있는 것이 바로 인간에 관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 장 자크 루소
대학원 수업시간에 한 여학생이 발표를 했다. 그녀는 발표를 무척 두려워해서 자신의 리포트를 다른 학생이 대신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발표를 하기 전에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영력하기에 용기를 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하고 리포트를 읽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발표는 그렇게 순조롭지가 못했다. 발표라고 해봐야 원고를 보고 읽으면서 가끔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정도였지만 그녀는 내내 떨리고 흔들렸다. 발표를 듣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녀가 갑자기 울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당연히 그녀 스스로가 이런 떨림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떨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공포에 가까운 것이다. 겨우 발표를 마친 그녀는 홍당무가 되어서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녀는 더욱 의기소침해졌으며 발표에 대한 공포증은 심해졌다.
며칠 후 그녀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성공적으로 발표해서 큰 박수를 받는 장면을 상상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어두웠다.
"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어요. 내가 너무 잘해서 사람들에게 박수 받는 것, 그게 더 두려워요. 그런 모습은 제게 어울리지 않아요."
그녀는 너무나 오랫동안 발표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이 잘하는 모습마저도 두려워하게 되는 역설에 빠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성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런 성공을 거둘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날의 부정적인 경험들이 그녀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작용해서 자존감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스스로 성공하는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다음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망 같은 것이다. 자신의 성공이 진정한 실력이라기보다는 우연에 의해서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또 언제 실패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언제 닥쳐올지 모를 실패에 대해 변명하거나 비난할 거리를 만들어두려 한다. 그만큼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싫어했던 시간은 책읽기 시간이었다. 혼자서 묵독을 하는 것은 좋았지만 남들 앞에서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싫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책 읽을 사람은 손 들어보세요."라고 해도 절대 손 드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다 강제로 지명이라도 당해 책을 읽을 때면 완전한 실패자가 되어 쓴 맛을 보아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남들 앞에서 책을 읽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긴장감은 가방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우연히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고 그 나라의 언어도 익숙하지 않다. 같이 가는 동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다. 이럴 때 당신은 가방에 무엇을 넣어갈 것인가?
여행에 대해서 긴장감이 높고 두려움이 클수록 가방에 들어가야 할 내용물들은 많아진다. 칫솔과 치약부터, 두꺼운 겨울 코트까지 다양한 것들이 필요할 것 같고 그러다보니 서너 개의 가방이 만들어지기 일쑤다. 반면에 해외여행에 익숙한 사람들의 가방은 단촐하다. 꼭 필요한 것 몇 개만 넣어간다. 무엇이 필요한지 대충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좀 다녀봤다는 자신감이 '부족한 건 현지에서 구하면 돼.'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방 크기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두려움의 크기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라는 두려움이 많은 것들을 준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충분히 준비되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때문에 시작을 주저하게 되고 좀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게 가방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살아가면서 자신감을 축적한 사람들에게는 해외여행이라든가 새로운 직업을 갖는다든가 하는 것들이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도전한다. 삶에서 얻어낸 긍정적인 경험이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에서 자신감을 축적하지 못하고 세상이 주는 위협과 두려움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이리저리 재보게 되고 주저하게 된다. 그리고는 결국 "안 돼, 그건 위험해."라고 말하며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 자신의 성공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안전지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불안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조그마한 행복마저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런 불안 때문에 남편에게 집착하고, 아이들에게 의존하고, 직장에 매몰된다. 이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와서 사람에 집착하는 노이로제 환자로 취급받거나 일밖에 모르는 무감정한 기계로 인식될 수 있다. 자신의 안전지대를 지켜내려는 노력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불신은 용기를 위축시키고 심리적으로 안전한 곳에만 머물러 있게 만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안전지대는 확장하지 않으면 축소되는 특징을 가졌다. 사회적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작은 행복을 지키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지금의 행복을 즐기고 내일 또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밝게 생각해버리는 사람이 행복하다. 바로 그때 안전지대는 확장되기 때문이다.
발췌출처 : 안상헌 著 자신감 -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