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원아웃에 주자 만루, 절체절명의 순간 투수코치가 타임아웃을 부르고 투수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정작 마운드에 올라간 코치는 투수에게 야구랑 전혀 상관 없는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내려온다. 투수는 간단히 위기를 마무리하고 승리 투수가 된다. 코치는 그저 긴장 해서 잔뜩 힘이 들어 가 있는 투수의 쓸 데 없는 힘을 빼주고 왔을 뿐이다.
골프를 배우는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몸에 힘을 빼고 치라는 소리다. 힘을 빼야 더 정확히 멀리 골프 공을 칠 수 있다는 말이다. 야구의 타격이나 테니스도 마찬가지다. 그뿐이랴 수영을 할 때는 온 몸에 힘을 빼야 물에 뜰 수 있다. 사실 이 힘을 빼라는 소리는 모든 운동을 배울 때 초보자들이 항상 들어야 하는 소리다. 그리고 우리는 이 힘 빼기가 우리의 인생 모든 것에서도 중요한 기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힘을 빼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모든 응원에는 “힘 내라!”는 말만 있을 뿐 “힘 빼라!”는 말은 없다.
“힘들 때 힘을 빼면 힘이 생겨요.”
김하나 작가의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은 주사 바늘 앞에 초연한 엉덩이처럼 힘을 빼면 삶은 더 경쾌하고 유연해진다고 말한다. 따끔한 일침이 두려워 엉덩이에 힘을 주면 주사는 더 아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작가는 어릴 때 부모님이 늘 말씀하시던 “만다꼬?” (“뭘하려고?”,“뭐 한다고?”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가 아버지의 철학이 담긴 집안의 진짜 가훈이었던 것 같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난 꼭 그 자리에 오르고 말 거야.” “만다꼬?”
“우리 회사를 세계 1위 회사로 만들 겁니다!” “만다꼬?”
우리 가족은 이 말을 정말 자주 사용해왔다. 나는 한동안 ‘만다꼬’가 싫었다. 내가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 부모님은 여지없이 “만다꼬?”라고 되물었다. (……) 그러나 나이가 더 들어서 독립을 하고 나니 ‘만다꼬’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질문이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또는 사는 게 힘에 부칠 때면 ‘만다꼬?’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왜 이것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나는 이것을 진정 원하나? 아니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 떠밀려서 하는 건가? 내 안에 내재된 ‘만다꼬?’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게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부분에 쏟고 있던 힘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이 힘 빼기의 기술은 채용 면접을 볼 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을 때, 중요한 발표를 할 때, 누군가가 미워질 때도 위력을 발휘한다. 미용실에서 머리 감겨주는 분에게 “힘 빼세요” 소리를 듣고 긴장해서 목이 더 뻣뻣해진다면 나와 머리 감겨주는 분 모두 매우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힘 빼기의 유용성은 상대가 있을 때 더욱 커진다. 상대를 유연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서로 불필요한 힘을 쓰지 않게 하여 준다.
『요즘 나는 수영 초급반을 다니고 있다. 고급반 대선배님들(주로 할머니들이다)은 종종 ˝힘 빼기가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힘을 빼는 데에 가장 힘이 든다니, 인생에서 중요한 잠언들이 으레 그렇듯이 참으로 모순적이다. 뒤처질까 봐 온몸에 힘을 주면 줄수록 숨이 가지고 결국 가라앉아버리는 걸 여러 번 겪은 나로서는 공감도 되지만 여전히 힘 빼기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힘을 빼고 물에 나를 내맡긴 채 나아가는 것. 딛고 선 땅이 없어도 두려움을 이기고 나를 믿는 것. 수영의 도를 깨치면 인생에도 도가 틀 것만 같다.』
만일 지금 당신의 인생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잠시 힘을 빼보시라. 다시 물 위로 몸이 떠오르고 숨이 쉬어질 것이다. 그럼 이제 다시 천천히 숫자를 세면서 물을 저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염호준 컨설턴트 / yhj@nterw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