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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말, 제대로 알고 하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는 볼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그 가운데서도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영화의 말미, 먼 미래의 생물체가 A.I.를 발견하고 그 아이와 소통하는 장면이었다.



그 생물체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초행성적 존재로 콩나물 대가리처럼 멋없게 생겼지만 소통의 방법만큼은 정말 멋졌다. 다름 아니라 다른 존재의 뇌파와 직접 연결되어 그 존재가 말하고 싶은 것을 이내 감지하고 그의 필요와 욕구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A.I. 소년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와의 따뜻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읽어내곤, 그리움을 해소하기 위한 자신의 해결책을 뇌파로 건네주는, 진실한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교류였다. 오늘날 소통의 보편 수단인 말이 미래의 어느 시점, 공기 중에 산산이 흩어져 수단이라는 방편을 벗고 소통이라는 본질만 오롯이 남기고 스러져간 것이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영화 속 미래의 존재들처럼 말이 필요 없는 사이, 소위 ‘통하는’ 관계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말싸움 구경,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듣는 재미는 없겠지만, 오해와 실수 없이 모두가 완벽하게 소통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말은 수단이며 사람 사이의 소통을 돕는다는 목적을 위해 기능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는 마치 ‘쓰기와 읽기’처럼 듣기와 함께 한 세트가 되어야 제대로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처한 상황, 내가 하는 말 사이의 괴리, 마찬가지로 상대가 처한 상황, 마음상태와 그가 택한 언어 사이의 괴리, 가장 중요한 또 하나, 나의 언어와 상대의 언어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고 오해가 생기며 그것이 쌓이다 보면 말하기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난 말을 잘 못해’ 혹은 ‘말은 말일 뿐이야’, ‘말은 할수록 손해야’ 등의 생각에 이를 수 있다.



말이란 대개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갖는다. 세상과 관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expression), 상대가 나를 인정함으로써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하고(confirmation), 때로는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며(influence) 변화하기도 하고(change),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수행하기 위해(work), 창조를 위해(creation) 소통하는 것이다.



이외에 흔히 사람들이 간과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 바로 말하기를 통한 자기 점검이다. 이것은 말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경험이다. 내가 ‘어떠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진정 그러한가?’라는 자기 점검이 시작되는 것이다. 때론 내가 한 그 말이 내게 올가미가 되는지 디딤돌이 되는지 판단해봄으로써 내가 말하는 ‘사랑’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말은 그래서 경우에 따라 감정을 증폭시키기도, 중단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의 역할이 또 하나 있다. ‘난 물이 정말 무서워’라고 말하고 나서, 과연 물이란 게 내가 무서워할 만한 것인지 자문하며 자신이 고백하고 발설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수영 선수로 변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론 자신의 말에 발목을 잡힐 때도 있다. ‘저의 말하기 불안 증상은 얼굴이 붉어지고 손이 떨리며 눈 맞춤을 못하는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불안을 이야기하고는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명확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정확히 개념 정의하고 나서 오히려 덫에 걸리는 경우이다.



결국 말이란 타인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함께 일을 도모하거나 놀고 자신을 점검하고, 그래서 자신에게서 해방되는 소통의 수단이다. 영화에서처럼 말은 우주선의 외피처럼 떨어져나가고 ‘띠융 띠융’ 뇌파를 쏘는 것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올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 올지 모를 궁극의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고 간곡히 나를 전달하고 오해의 폭을 좁히고 현실을 보정하고 진리를 탐구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자문해보자. 나는 세상과 타인에게 말을 걸고 싶은가. 그러한 마음과 정성이 부족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가.


출처: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