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지식의 시대라고 한다. 또 전문가의 시대라고도 한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자본과 값싼 노동은 비교적 쉽게 조달할 수 있는 데 반해 그것들을 결합시켜 돈이나 부가가치로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나 지식은 흔치 않기 때문에 그런 아이디어나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21세기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말처럼 의미가 불명확하고 사람마다 자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도 많지 않은 것같다. 우리는 보통 전문가라고 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규교육을 받고 두툼한 보고서를 쓰는 사람을 연상하기 쉽다. 교수, 박사, 경영컨설턴트와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전문가인가? 물론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전문가이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것을 전문영역이 있어 그 사람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그 일을 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라는 사람이 전문지식을 갖고 있지만 비슷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외부에 얼마든지 있어 언제든지 대체가능하거나 A라는 사람이 빠져도 조직의 성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과연 그 사람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전문가인가 아닌가는 고용가능성과 대체가능성이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봐야 한다. 고용가능성이란 지금 고용되어 있는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언제든 다른 회사로 갈 수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 고용되어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 전문성이다. 만약 다른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지식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은 고용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대체가능성이란 현재 고용되어 있는 사람이 빠질 경우 조직의 성과에 얼마만큼 영향이 있을지를 보는 것으로 고용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 전문성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없어도 조직의 성과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면 그 사람의 필요도는 그리 높지 않고 대체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전문성은 고용가능성은 높고 대체가능성은 낮은 경우일 것이다. 즉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지만 현재 있는 곳에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진정한 전문가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기존의 전문가와 구별하여 '달인'이라고 해두자.
달인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전문가와 다르다.
첫째 달인은 기술적 능력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적 능력과 개념적 능력도 갖고 있다. 기술적 능력(technical skill))이란 전문분야에 관한 지식과 경험, 인간관계적 능력(human skill)은 전문분야를 수행해가는데 필요한 협력과 조정의 능력, 개념적 능력(conceptual skill) 은 주어진 일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기획하여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전문성이라고 하면 보통 기술적 능력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진정한 의미의 전문성은 이 세가지 능력이 겸비되어 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상의 세가지 능력을 갖춘 사람은 고객만족능력, 혹은 마케팅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어도 마케팅을 잘못하면 실패하는 것처럼 개인도 역시 아무리 뛰어난 전문성을 갖고 있어도 고객만족 혹은 마케팅을 잘못하면 성과를 내지 못하고 높은 평가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전문성만이 아니라 전문성을 활용하여 고객만족까지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은 보통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달인은 곧 프로페셔널과 동의어인 것이다.
셋째 전문가를 이야기할 때 흔히 I자형, T자형, π자형 전문가를 이야기한다. I자형은 한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 T자형은 한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다른 분야도 깊지는 않지만 두루두루 아는 사람 , π자형은 2개 이상의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지식이 폭증하고 변화가 격심한 디지털시대에는 T자형과 π자형 전문가의 중요성이 높아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서 약간 주의할 필요가 있다. T자형이나 π자형이라고 이야기할 때 잡학박사와 같은 식으로 다방면에 걸쳐 지식이 많은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폭넓은 지식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어느 특정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때 그 전문성이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보완적 지식을 제공해주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병원운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 의학지식 뿐만 아니라 병원경영이나 인간이해에 관한 지식도 필요로 하는 것같은 경우이다. 탁월한 기술을 갖고도 마케팅을 몰라 실패를 하는 것은 전문가가 I자형 전문가에 머물러 T자형이나 π자형의 달인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하는 10%와 그렇지 못한 90%로 양극화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10%의 성공자는 전문가가 아니라 달인으로 채워지고 있다. 전문가를 넘어선 달인이 되어야만 바늘구멍같은 성공자 대열의 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