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바람과 달리, 그들에게 지속적인 불편함을 주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기업에선 핵심 인재였을지 모르지만, 그 중소기업에선 차선의 인재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스펙을 중요시하는 해외자원개발 회사로 이직하게 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중소기업에서 일한 경험은 현재 중소기업의 채용을 비롯한 인사 업무를 담당자들과 의논하는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구직난과 구인난, 그 모순의 간극
한국의 총 사업체 중 중소기업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대부분 70~80% 정도로 답변하는 경우가 많지만, 답은 <표 1>에서와 같이 99%다. 더 의미 있는 수치는 86.8%라는 중소기업 종사자 비율이다. 한국은 여타 국가에 비해 이 비율이 월등히 높다. 즉 우리 주변
직장인 10명 가운데 1명만이 대기업을 다닌다. 그런데 대기업의 자산 및 매출액이 GDP(국내총생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고1), 보도 매체에서도 주로 대기업 중심의 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착시 현상과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가 인재상을 언급하고, 채용과정을 떠올릴 때 자연스레 대기업 중심으로 사고가 흐를 때가 많다. 엉뚱한 얘기일지 모르나, 세대론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하면서 대다수의 대학 안 나온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386세대론을 적용시키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정작 인재
와 채용에 대한 고민은 중소기업에서 더욱 절실한 주제이나, 안타깝게도 중소기업 대표들과 구인난을 함께 대화해 보면 회사에 적합한 인재상이 구체적이지 않고, 일부는 대기업의 인재상과 유사하다.
더구나 최근 몇 년간 '이직하고자 하는 인재'가 넘쳐나다 보니, 와튼 인적자원센터의 소장인 피터 카펠리 교수가 《부품사회》란 책에서 "직원 채용이 어려운 이유는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지원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원자가 너무 많고 그들의 자질 또한 매우 다양해서다"라고 했던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구인난과 구직난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이뤄지는 이유가 그 책 속에서 상세히 소개되는데, 어떤 최고경영자는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선 직원을 언제든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고들 생각하겠죠" 라고 말한다. 적임자를 찾을 수 없는 것도 맞는 얘기나 채용의 문턱이 너무 높은 것도 모순적인 간극의 심화에 작용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에 우수 인재를 추천해 보면 그들의 '눈높이'가 대기업 못지않게 까다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스티브 잡스를 이렇게 뽑았다
얼마 전에 중소기업의 디자이너 채용을 도운 적이 있다.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만난 수십 명의 경력 디자이너 중 유학을 갔다 오지 않은 디자이너가 손에 꼽힐 정도로 스펙들이 화려했다. 인재 추천의 기획 단계에선 유학파를 제외하려 했으나,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유학은 더 이상 '무기'가 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더울 놀라운 것은 '과잉'으로까지 느껴지는 화려한 유학 경력이 중소기업의 디자인 팀장에겐 오히려 '미흡함'으로 보이는 현상이었다. 마치 부족한 디자인 감각을 메우려는 것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추천한 고스펙 후보자들이 줄줄이 떨어졌다. 탈락된 후보자 중 일부는 대기업에 합격하기도 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이직하기도 했다. "실력과 수준이 못 미치고, 헝그리(도전) 정신이 부족한데, 스펙이 무슨 소용이냐?"는 디자인 팀장과 대표이사의 말은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았다.
아타리란 세계적인 게임회사를 운영한 놀란 부쉬넬은 "나는 스티브 잡스를 이렇게 뽑았다"라는 책에서 잡스의 창의성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어떻게 채용하게 됐는지, 어떻게 수용하고 인내했는지 소개한다. 잡스와 같은 '기행' 은 아니더라도 기존의 구성원과 다르게 보이는 인재를 영입해 조화를 이룰 때까지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사실 배짱과 실험정신이 아니라 외국인을 채용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이문화 수용성' 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보이는 면에 현혹되지 않고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필요한 인재를 알아보는 '知人知鑑의 통찰력'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비에게 제갈공명을 천거한 사마휘(司馬徽)의 안목을 갖고 있진 않기에 인재상을 명확히 하고 채용 과정의 세공을 더하는 것이 평범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 하겠다.
어떻게 탁월한 팀이 되는가
몇 해 전에 브레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Moneyball)> 이란 영화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인사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에 관한 최고의 영화' 라고 소개하며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머니볼은 실존인물인 메이저리그의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 빌리 빈이 '출루율'을 기반으로 연봉이 낮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해 강팀으로 변화시킨다는 내용이다. 필자가 주목한 건 스카우트(채용)의 기준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영입하려는 선수들에 대해 전문 스카우터들이 각각의 근거를 제시하는 장면이었다. 매우 과학적으로 프로야구 선수들을 스카우트할거라는 기대와 달리 기업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감에 의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빌리 빈 단장은 '직관'보다는 데이터에 근거한 '출루율'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 실험은 일정 부분 성공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출루율이 높다는 것이 안타를 잘 치거나 홈런을 잘 친다는 게 아니라, 볼넷이든 몸에 맞는 공이든 자주 나가면 된다는 뜻이었다. 다소 수비는 못하고, 나이는 많을 지라도 '출루율이 높은 선수'가 빌리 빈 단장의 '인재상'에 부합했던 것이다.
과연 중소기업에 걸맞은 인재상은 무엇일까. 사실 이건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획일적으로 통일시킬 수도 없다. 각 기업마다 조직 내 베스트 프랙티스에 해당하는 인재들의 교집합을 추출하는 게 의미 있는 작업일 수 있다. 그리고 보편적인 제안을 한 가지 하자면
'협조적인(Cooperative) 인재'를 찾으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대기업은 R&R(Role and Responsibility, 기업이나 팀에서 구성원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이 명확한 야구팀 같은 조직이다. 반면 중소기업은 R&R 보다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선호하고 토탈사커를 지향하는 축구팀과 유사하다. 현대 축구에서 선호하는 선수는 뛰어난 개인기를 자랑하는 선수 못지않게 '활동량'이 많은 선수다. 캡틴 박지성 선수가 화려하진 않아도 최고의 선수일 수 있었던 건 결국 그의 성실한 태도와 다양한 포지션을 지원하려는 협조적인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축구팀 같은 중소기업에서도 결국, '활동량'이 많은 '협조적인(Cooperative) 인재'를 채용할 수만 있다면 슈퍼팀이 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최고의 팀을 만드는 사람관리의 모든 것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아니 새일맘(새로 일을 시작하는 엄마)의 재취업을 도와준 적이 있다. 흔히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가운데 일하고 싶어 하는 인재는 매우 많다. 하지만 그들의 공백을 글로써 접했을 때 이력서에 선뜻 눈길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큐레이터 몇 년의 경력보다 4년 이상의 단절이 먼저 보였다.
필자는 같은 이력서를 여러 번 읽는 편이다. 어쩔 땐 마치 시를 읽듯이 열 번도 넘게 읽는다. 이력서를 통해 '논리적인 사고력'을 보려하기 때문이다. 그 후보자의 텍스트에선 단단한 문장력이 인상적이었다.' 몸을 거칠게 사용해야 하는 특이한 자격증'이 있는 것으로 봐서도 무언가를 반드시 하고 싶은 의욕이 전달됐다. 그래서 직접 만나봤다. 정제된 음성에서 훈련된 인성이 느껴졌고, 형형한 눈빛에서 에너지가 다가왔다. 결국 그는 지난한 우여곡절의 채용과정을 거쳐 합격했을 뿐 아니라,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없음에도 컨설팅
펌이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제안서를 작성하는 컨설턴트로 멋지게 잡체인지(Job Change·경력 변화)까지 했다.
후보자는 마치 길에 핀 '들꽃' 을 발견해 주었다며 이력서를 휴지통에 버리지 않은 나에게 감사했지만, 필자가 오히려 감사한 건 최고의 팀을 만들려는 본질에 집중해 그 후보자 내면의 궁극적인 잠재력을 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인터뷰(면접)를 반복했던 중소기업 대표
와 팀장들의' 뚝심' 이었다.
그렇다. 글보다는 목소리를 듣는 게 판단의 오류를 줄이고 목소리만 듣기 보단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게 사람을 깊이 있게 아는 안전한 방법이다. 그리고 확신이 설 때까지 다양한 상황과 여러 방법으로 후보자를 만나면서 의심과 의문을 줄여나가는 것이 정석이다. 구글 본사에서 근무하는 구글러에 따르면, 구글은 후보자가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면접을 여러 번 본다고 한다. 필자도 외국계 기업의 면접을 다양한 간부들과 수차례, 장시간 본 경험이 있다. 이건 분명히 참조할만한 방법이다. 물론 중소기업의 여건과 여력으로 볼 때 면접에 많은 시간을 집중하기 쉽지 않겠지만, 믿을 만한 헤드헌터를 통하든 사내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은 임직원을 면접관으로 하든 면접 과정을 인사 부서만의 일이 아닌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두의 일로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차이를 만드는 조직
사람이 자동차도 아니고, 채용 과정에서 스펙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거대 기업이 스펙을 보는 나름의 타당한 근거가 있는데, 크게 2가지 바로 '성실성과 학습력'이다. 다수가 인정하는 유명 대학을 갔다는 것은 특정 시점(보통, 청소년 시절)에서 최
선을 다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때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데도 부모나 학교는 획일적으로 대학을 가라고 한다. 그 권위에 순종하면서 학생으로서 기본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것은 매일 출근해 9 to 6 를 지키고, 인터넷 안하고 SNS 안하고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묵묵히 해야 하는 인재상에 부합한다.
'학습력' 측면에서도 주입식 교육을 열심히 받아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이뤘다는 것은 주어진 기업교육과 선배들의 가르침에 일정 수준까지 따라올 수 있다는 반증이 된다. 독학과 스스로 깨우침도 중요하지만, 선배들의 일정한 역할이 인정되고 기업의 철학이 존중되는 교육을 통해 회사의 문화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정규 교육을 충실히 수행하며 따라갔던 'Learning Ability', 바로 학습력이다. 그러니 스펙을 따진다고 거대 기업들을 비판만 할 수도 없다. 다만, 중소기업마저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이미 시작부터 거대 기업과의 인재 전쟁에서 진거다. 어쨌거나 중소기업의 채용은 대기업과는 다른 관점과 방법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한 중소기업 대표는 '결핍감' 을 가진 인재가 좋다고 한다. 스마트한데 경력 관리가 제대로 안 돼 '실존' 만큼 인정해 줄 데가 별로 없는 인재를 찾는다는 뜻이다. 사실 이력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경력의 관리도 그 시점에 무언가를 반드시 했어야 한다는 일반화에 틀을 맞춘 것이라서 이력서가 소박한 연성비(연봉 대비 성과비) 높은 인재는 다소 시간이 걸릴 뿐,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 회사에서 인턴을 경험하고, 다시 국내 석사과정을 밟은 디자이너였지만, 디자이너로서 취업이 안 돼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를 한 후보자가 있었다. 미팅 중 "매우 일을 하고 싶었나 봐요?" 라는 물음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뭐라도 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던 거다. (그녀를 디자이너로 소개하자)그걸 단박에 알아낸 스타트업(벤처기업)의 젊은 CEO는 그녀를 바로 스카우트했다. 그리고 그 디자이너에게 가슴을 뛰게 하는 목적의식을 만들어주려 애쓰고 있다. 《차이를 만드는 조직》이란 책의 마지막 문장은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마스터 요다의 대사다.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야."
차이를 만드는 조직의 시작은 '채용의 변화'이다. 새롭게 채용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한 번 해보고 안 된다는 변명보다는 건강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언젠가부터 노동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됐고, 일하는 즐거움은 밥벌이의 지겨움으로 변질됐다. 그러니 기왕 하기 싫은 일을 할 거면, 돈 많이 주는 대기업에 가야한다는 게 취준생(취업준비행)의 당면 과제처럼 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세상의 잣대를 뛰어 넘어 작은 회사를 다니며 자잘한 재미를 발견하는 사람들도 많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게 부끄럽게 여겨져 명함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구직을 못해 필자에게 와서 우는 후보자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구인을 못해 필자에게 하소연을 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일자리는 많고, 인재도 많다. 어차피 인재의 정확한 개념도, 채용의 모범답안도 정해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