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는 일 (業, 업)과 힘쓰기(務, 무)를 동반하는 행위입니다. 말 그대로 일에 힘쓰는 것이지요. 그런데 관건은 '일'보다는 '힘쓰기'인 듯합니다. '업무'와 사촌뻘인 여러 연관 단어들이 '무'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근무, 기무, 노무, 격무, 사무, 시무, 실무, 잔무, 잡무, 집무, ···. '일'이란 기본적으로 '힘쓰기'인 것이고, 그 힘쓰기의 강도나 중요도, 성격 등에 따라 '무' 앞에 붙는 글자가 달라지고 있지요. 그랬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원래 힘쓰는 것, 힘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던 겁니다!
오늘도 힘드시지요? 그만큼 열심히 일하셨다는 증거이니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힘들어서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요? 저런, 죄송하지만 당신이 회사원인 이상 뭐라도 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곳이라면 회사[모여서(會) 일(社)하는 곳]라 불릴 수 없겠지요.
아무 것도 하기 싫지만 아무 것이라도 해야 하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하면 좋은 잡업 세 가지! 자, 보세요. '잡무'가 아니라 '잡업'입니다. 힘쓰기(務)가 없는 일(業)이라니까요. 잠시 '무'의 고통에서 벗어나, 힘 안 들고 유익한 당신만의 '업'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잡업 1. 나의 업무를 진맥한다! 궁극의 폴더 정리
궁도(弓道)라 불리는 활쏘기 기예의 첫 수련 단계는 호흡이라고 합니다. 호흡법을 익히는 데에만 길게는 수 개월이 걸린다는군요. 그렇지요. 왜 아니겠습니까. 활 시위란 자고로 '호흡을 가다듬고' 당겨야 하는 것이거늘. 시위를 당기고, 살을 먹이고, 과녁에 쏘는 일련의 과정을 아우르는 기본 중의 기본이 바로 호흡인 것입니다. 들숨과 날숨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활쏘기라는 전체 프로세스가 성립할 수 없겠지요.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궁도의 호흡에 해당하는 것이 업무에서는 '폴더 관리' 아니겠는지요. 들어오는(신규 생성하는) 파일, 나가는(최종 제출하는) 파일은 그 모습 그대로 업무의 들숨/날숨이라 할 만합니다.
연도별, 업태별, 유관부서별, 유관인명별 등등 세부 항목별로 일목요연히 분류된 업무 폴더들은, 있어야 할 곳에서 충실히 제기능을 하며 우리 몸에 피를 돌게 하는 장기들과도 같습니다. 너무 거창한 비유라고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떻습니까.
"여어, 박 대리. 우리 그, 3년 전에 OOO 제품 론칭할 때 홍보한다고 만들어뒀던 지면광고 시안 있잖아. 수정을 한 다섯 번은 했던가. 기억 나지? 그거 최종 파일 좀 메일로 보내줘요. 갑자기 부장님이 찾으시네."
이때 당신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네"밖에 없습니다. "네"라고 대답한 당신은 이제부터 몇 번의 클릭을 하게 될까요? 클릭을 거듭하여 3년 전으로 역상해야 합니다. 박 대리가 만약 폴더 정리를 똑부러지게 해뒀다면, 딸깍딸깍 부산스럽게 클릭음을 남발하진 않을 겁니다.
이를테면 이런 프로토콜로 해당 자료를 수월히 찾아낼 수 있겠죠. 폴더라는 것의 역할 자체가, 사무실에 잔뜩 쌓인 서류더미를 없앰으로써 검색과 보관을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직장인들은 의외로 드뭅니다. 휴가 또는 퇴사처럼 당사자가 누군가에게 업무를 넘겨줄 때, 폴더 관리 실태가 여실히 드러나지 않던가요.
Tip. 폴더 관리의 핵심 체크 포인트
- 누가 넘겨받더라도 그 즉시 필요한 자료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 어떤 자료를 찾아야 할 때, 머릿속에서 폴더명만으로 검색 맵핑(mapping)이 가능해야 한다
- 폴더는 뎁스(depth)별로 세분화한다 [예: 전략기획실 자료 --> 1팀 자료 --> 2017 3/4분기 연간 KPI]
- 폴더 세분화 시 연도 구분은 필수, 월별/분기별 구분까지 해놓으면 더욱 좋다
정갈히 정리/관리된 폴더는 자신이 진행했던 업무의 맥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이렇게 자기 업무를 손쉽게 진맥할 수 있다면, 그때그때의 일에만 치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커리어의 맥락을 야무지게 인지하는 스마트한 직장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바쁜 업무 중에 이런 세세한 폴더 관리까지 챙기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지금, 그러나 뭐라도 해야 하는 바로 지금, 당신의 업무 폴더들을 꼼꼼히 정리해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잡업 2. '컨펌' 밖으로 기획하라
아무 것도 하기 싫은데 때마침 급히 처리해야 할 일마저도 없는 기상천외한 골든타임을 잡으셨다면, 헤르메스가 페르세우스에게 날개 달린 신발을 주었듯, 여러분의 기획력을 비상시킬 타이밍입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기획을 컨펌하기 위해 대기하지 않는 상황! 당신은 이른바 '컨펌'이라는 타인/기성의 기준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오로지 당신 자신만의 무언가를 기획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의 팀에게 '해군이 아닌 해적이 되자'라고 일갈했죠. 남의 아이디어를 해적질하자는 뜻이 아니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우리 것'을 만들어보자는 메시지였습니다. 물론, 그의 팀원들은 스티브 잡스라는 거대하고 까다로운 컨펌 기준에 짓눌려야 했겠지만, '해군 아닌 해적'이라는 워딩에서는 확실히 톡 쏘는 사이다 맛이 납니다.
분명히 있을 겁니다. 내가 제출한 기획서가 상사로부터 반려되었을 때(속칭 '까였을' 때), 그 반려의 조항들에 거세게 반기를 들고 싶었던 적이. 이것만은 내가 옳다(당신이 틀리다), 라는 창조적 에고(ego)야말로 열성적인 기획을 이끌어내는 발심의 단계입니다. 회사에서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의 그 '아무 것'의 실체란, 다름 아닌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일 경우가 많을 텐데요. 매출, 기대효과, 회사에 가져다 줄 긍정 요인, SWOT 분석, 집행 예산, 시행 소요 기간 등등 온갖 제약 요소들은 잠시 잊고, 평소에 내가 정말로 기획해보고 싶었던 무언가를 스케치해보세요. 독일어에 'der kunstlosen kunst'라는 말이 있다는데요. '기예 없는 기예'라는 뜻입니다. 나를 나이지 못하게 하는 모든 제약 요소들을 잊는 순간,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깔끔히 잊는 순간, 진정한 무아지경의 기예가 발현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짬짬이 스케치해둔 '나'만의 기획들은, 그 자체로 당신의 내공이 됩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으니, 자체 기획의 연구 범위와 아이디어 발상 심도는 넓고도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개 회사원의 외연은 확장되고, 코어(core)는 시나브로 본질의 지층에 가 닿습니다. 당신은 아무도/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급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잡업 3.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다만, 도구를 정비한다
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연장"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 연장을 잘 사용해 성실히 글쓰기라는 작업을 이어간다는 것이지요. 회사원들에게도 그런 연장, 도구들이 있습니다. 각종 문서 작성 소프트웨어부터 시작하여,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인터넷 브라우저, 멀웨어 예방 백신 등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자신의 도구들을 정비하나요? 이 도구들이 보관된 도구함인 컴퓨터 OS는 또 얼마나 자주 손질을 해주나요? 이런 질문이 하찮다고 느껴지나요? 고수는 싸우지 않는 날에도 칼을 닦는다고 하죠. 도구에 대한 애정은 곧 그 도구로써 행해지는 일에 대한 정성 어린 태도입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OS 및 오피스 프로그램의 업데이트를 확인하세요. 구버전에서 신버전으로, 당신의 '검'을 벼리세요.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습관은 일을 대하는 근본적인 정신 상태를 고취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업데이트뿐 아니라 실무에 유용한 단축키, 숨은 기능 등을 연마해두는 것도 좋겠지요. 남성 직장인들은 아마도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군대 행정병들은 마우스 없이 키보드만으로 모든 문서 작성을 소화해낸다는 우스갯소리 말입니다. 즉, 모든 단축키를 암기하였으므로, 두 손을 키보드 위에 얌전히 올려놓은 상태로도 온갖 서식 옵션과 특수기능 따위를 전부 소환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무림의 야화 같은 이런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일 범인이 과연 있겠냐만, 남들보다 한 발 앞선 커리어를 원하는 직장인들이라면 솔깃할 만한 이야기 아니겠는지요. 보통의 사무직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오피스 프로그램과 OS(일반적으로 MS오피스, 한컴오피스, 윈도우)에는 비기(?記)라 할 만한 각종 단축키와 기능 들이 장착돼 있습니다. 그 모든 걸 통달하기는 어렵더라도, 자신만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잡기술)을 몇 가지 골라 터득한다면 업무력은 축지(縮地)의 경지로 우뚝 올라설 것입니다.
잡업을 대업으로 바꾸는 몫은 당신
'봉테일'이라고도 불리는 영화감독 봉준호는 "결국 영화는 디테일들의 합"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잡업의 '잡' 또한 업무의 디테일이 돼줄 수 있을 겁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때를 자신만의 비밀수련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삶의 디테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잡업은 누군가에겐 대업을 이룰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당신을 응원하며, 그리고 당신의 비밀수련을 고대하며-
출처: 삼양그룹 공식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