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휴가를 동해바다에서 가족과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에 잠긴 모 중견기업의 영업부 김 과장. 그는 과연 앞으로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수 있을까, 두 아이를 무난히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하게끔 한 후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앞길이 막막해지는 느낌이다. 대략 20년 이후를 은퇴 시기로 잡는 것은 요즘 직장 분위기나 사회 분위기로 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에 은퇴(隱退)는 '직임에서 물러남' 또는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이라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전문직 종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넉넉한 여건도 아니고 월급을 받아 근근히 살아가는 처지인데, 이 추세로는 대책을 세우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나마 현직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아울러 이것은 비단 김 과장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평균수명은 남자는 72.3세, 여자는 80.9세이다. 앞으로 고령화 정도는 더욱 더 심화될 것이라고 한다. 최근 신문지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노후 생활과 관련한 각종 조사분석 자료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비중은 전체 인구의 7% 가량이지만 2020년 이후에는 인구의 고령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선진국 수준인 15.1%로 예상된다고 한다. 또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의료기술의 발달은 퇴직 이후 사망까지의 노후생활 기간이 점점 늘어남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 헤드헌팅 회사에서 '직장에서 느끼는 체감정년'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2%인 303명이 37∼41세라고 답했다. 결국 평균 입사연령 27.5세에서 38.8세에 이르는 11.3년 동안의 소득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 등을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의 상황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이와 같이 경제활동을 통해 소득을 벌 수 있는 기간은 줄어든 반면, 노후생활을 해야 하는 기간이 늘면서 소득 없이 너무 오래 사는 위험이 발생한다.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뿐 아니라 사회 및 개인 단위의 준비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과거 20세기에는 정년시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퇴직 후에 받은 돈과 예전에 모은 돈을 합하여 대략 15년에서 20년 정도의 노후 자금에 충당하면 될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오늘은 어떤가? 실질정년이 줄어드는 가운데 수명은 늘어나므로 예전의 두 배에 달하는 은퇴 후의 생활기간에다 금리마저 절반이 되어 개인연금의 실질 수령액이 절반에 그치고 있으니 이중고를 겪게 되어 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민연금 제도는 현재의 경제활동 인구가 납입한 국민연금 보험료를 정부에서 관리하여 노후를 맞은 사람들에게 연금으로 지급하므로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02년 5월에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현재는 10명의 청장년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17년 후에는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또한 IMF 전, 기업에서는 장기 근속자에 대한 퇴직금 제도를 시행했었다. 하지만 IMF 이후 퇴직금의 개념이 연봉제의 도입으로 사라졌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퇴직금 중간 정산제로 인해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노후대책으로서의 역할이 상당히 격감하였다.
이러한 사회 상황에서 정부는 선진국과 같이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국민의 최저생활을 위한 사회보장 측면에서 국민연금을 무리하게 시행하게 된 것이고, 이러한 국민연금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개인연금저축의 가입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수립과 실천이 필요하다. 특별한 대책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대책, 즉 오래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관점과 연금보험 및 종신보험, 연금신탁과 함께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기본적인 자산관리 설계와 이에 따른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적당한 목돈을 모아 이자소득으로 편안하게 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차라리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 좋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가고 평생직업의 시대가 왔다. 전직이나 재취업에 대비해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