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현대인들은 내가 누구인지(Who am I),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Where am I going)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위선의 가면을 쓰고, 다른 가면 쓴 배우들과 함께 삶의 무대를 꾸려가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현대인의 두 가지 큰 병은 ‘자신을 잃어버린 병’과 ‘자신을 잃고도 깨닫지 못하는 병’입니다.
현대인에게는 무한한 지식의 대양이 펼쳐졌지만 많은 지식이 위대한 인생의 증거는 아닙니다. 뉴톤(Newton)은 바닷가에서 조각돌 하나를 들고 망망대해를 보며 인간 지식의 미소함을 탄식했습니다. ‘나를 아는 첫 걸음’은 “나는 부족하다!”라는 깨달음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감춰진 나의 참 모습을 발굴하고, 나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더 나은 나를 추구할 때 아름다운 인생은 펼쳐집니다.
어느 날, 염세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헌옷을 입고 공원에서 늦도록 사색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순찰이 그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도 내가 누군지 알면 좋겠소!” 그 고백이 ‘나’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고백입니다.
나의 모습을 찾으십시오. 그 모습이 비참해도 상관없습니다. 나의 비참함을 깨닫는 것은 극심한 고통이지만 사실상 그 깨달음이 나의 위대성을 증명합니다. 의식의 영역에서 ‘나’를 소외시키지 말고 끊임없이 ‘나’를 탐구하십시오. “내가 왜 여기서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언제나 긍정적인 답변을 구하십시오.
비극적인 인생이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나’를 자각하지 못한 인생입니다. 안타까운 인생이 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병원 창문에 드리워질 때야 ‘나’를 자각한 인생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이 있습니다. 일찍 ‘나’를 자각해 보람찬 삶을 엮어간 인생입니다. ‘나를 자각한다는 것’은 ‘부족한 나의 위대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나는 목적 없이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키일 케골은 말했습니다. “만물의 주인 인간, 그러나 가장 위대한 것이 부패하면 가장 최악의 것이 된다.” 지나치게 위대한 자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불행케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자신의 위대성을 유지하는 원료가 사랑과 은혜임을 자각한 것입니다. 자각은 반드시 책임으로 발전하기에 소중한 것입니다.
‘위대한 나’는 나의 위대성을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감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사명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땀을 투자하게 만듭니다. 사명은 용기와 도전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줍니다. 실패가 있어도 사명이 분명하면 다시 일어섭니다. 사람은 사명을 의식하는 만큼 강해지고 담대해집니다.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는 ‘사명의 자각’에서 생깁니다. 사람은 사명에 붙잡힐 때 가장 사람답게 됩니다. (061128)
- 이한규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