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취업, 올해도 좁은 문...뽑을까 말까, 몇 분 안에 결정”이란 주제와 비슷한 보도자료를 접하곤 한다. 과연 몇 분 안에 후보자는 자신의 역량과 내면을 모두 전달하 고, 채용의 의사결정자는 오류 없이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객관적 잣대’라는 건 애초에 있을 수 없다.《우리는 어 떻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2012, 고진석 著)》에서도 밝 히듯이 이미 우리는 (근현대사의 질곡이 많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배타적인) 한국인 들과 어울리며 (섬나라 같은) 한국에서 살기에 우리만의 정보와 정서가 입력되어 있다. 따라서 어떻게‘주관적 판 단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현실적이 라고 하겠다.
결국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우리
채용후보자를 오픈된 커피샵이 아닌 밀폐된 회의 실에서 보면 그 사람 주변의 공기가 주는 매력에 압도당 할 때가 있다.‘이성적이고 공정한’이라는 단어가 순식간 에 희석되는 경우를 접해보았다. 유능해 보이고, 여유와 기품이 느껴지는 분위기와 말투를 접하면 면접에 매우 강 하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서류만 통과할 수 있게 협 력하면, 최종 합격할 것 같다는‘잔꾀’가 들기도 한다. 우 는 후보자를 만난 때도 있었다. 그 솔직하고 진실하게 느 껴지는 모습에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그럴 때 불안 감이 엄습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장인 지 좀처럼 경계의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과 사고방식은 여전히, 또 앞으로도 헤어날수 없는 거짓말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말에 공감한다. 강 한 믿음은 거짓을 주관적인 진실로 만든다고 한다. 거짓 말 탐지기의 원리는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신체적 변 화와 징후로 알아내는 건데, 확신을 넘어서는 믿음을 갖고 말하게 되면 뇌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니, 당연히 거짓말 탐지기도 작동을 안 할 수밖에 없다. 이 실 험에 관한 보고서를 접하니,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의‘헐 리우드 액션’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허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을 창조하는 정교한 작업을 알아챌 수 있는 건 매의 눈을 갖고 있는 면접관도, 거짓말 탐지기 도, 본인의 뇌도 아니고, 오로지 본인의‘양심’일 뿐이다. 그 조차도 반복된 거짓말로 인해 양심이 무뎌지면 종국엔 거짓말의 경계가 무너져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 가‘팩트’인지 본인도 착각하게 되는‘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Cognitive Dissonance)’가 생긴다고 한다.
모두가 예스라고 하는 후보자(지원자)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납득할 근 거와 증거가 필요하다. 직관이나 직감이 아닌 논리적 추 리에 기인해서 말이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인 여러 선택 (대선이나 총선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충분히 숙고하여 판단할 수 있는 시간과 여러 정확한 정보가 주어져도 우 리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우리가 사람을 판단하기 어려운 건 그가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데에 이유가 있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진실한 사람이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든, 진실된 사랑을 하는 사람이든, 바람둥이든, 믿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세계적인 헤드헌팅 써치펌 이곤젠더 인터 내셔널의 컨설턴트인 페르난데즈 아라오(Fernandez- Araoz)는“면접을 두 거짓말쟁이의 대화”라고 표현했을 까? 결국, 인재의 부재가 아니라 채용 기준의 부재라는 생 각이 든다. 면접관으로 참여해 보면 스타트업은 물론이 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도 선명한 인재상과 각 포지션 에 적합한 채용 기준을 설명하기보단‘좋은 사람’을 뽑아달라는 두루뭉술한 요청이 대부분이다. 정작 회사(조직) 에서 필요한 인재가 어떤 자질과 역량을 갖춘 인간형인지 에 대한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다. 채용 전 얼마만큼의 시 간과 공을 들여서 예민한 시선으로 우리 회사에 걸맞은 인재상에 관해 정보를 제공했는지 자문하는 것부터 리부 팅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잘 판단하는 법
우리가 현재 겪는 채용의 어려움은 기준이 없거나 기준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기준에 맞는 사 람인지 여부를 본질적으로 꿰뚫어 볼 통찰력이 없는 게 한탄스러운 것이다. 이 점이 바로‘미션 임파서블 1’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채용에 자신 있는 인사팀장들 이 모였다. 근거를 질문하니 척 보면 알 수 있다는‘직관’ 을 언급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럼 지금 배우자와 결혼한 것에 만족하냐고 물으니, 거의 부정적인 답이 나왔다고 한다. 채용은 잘 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 평생의 반려자 를 선택하는 결혼은 실패했다는 모순된 얘기를 했다는 것 이다.
사람을 신중하게 고르고 판단한다는 면에서 채용이나 결혼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 보고, 지속적으로 관찰 하고, 데이터를 누적시킬 수 있다면 그 방법이 가장 오류 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어제까지 바람둥이였던 사람 이 결혼한다고 갑자기 성실한 배우자가 될 리 만무하고, 어제까지 일을 성의 없이 했던 사람이 갑자기 늦게 철난 사람처럼 열심히 일할 확률도 희박하다. 정보의 비대칭 리스크를 줄이면서 선택의 비논리적 근거를 낮추는 측면 에서 사내 연애나 동창이나 지인을 만나는 건 그래서 합 리적인 접근이며, 역시 (구글 등의 기업에서 강조하는 것 처럼) 아는 사람을 내부 추천하는 방식도 이런 면에서 설 득력이 생긴다.
결국, 직전까지의 모습을 근거로 유추할 수 있고, 그 건 결코 낙인이론도 아니며 편견도 아니다. 척 보아 사람 을 알 수 없기에, 실수를 줄이고자 각고의 조심스런 추리를 하는 것이다.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자. 우리들이 우정 을 나누고 싶었고, 오래 사귀고 싶었던 친구들이 공부를 1?2 등하는 학생이었나? 아니면 성적은 탁월하지 않아도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고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수용성이 있는 친구였나? 리더십이 남다르게 느껴진 친구가 공부를 1?2 등하는 학생이었나? 아니면 반장 등의 역할을 소화하 기 위해 공부 시간 및 개인 시간을 쪼개어 급우들의 고민 과 어려움을 공감하고 도움 주려던 친구였나?
정말로 기업이 채용을 통해 미래의 리더와 대표이사를 선발하고 싶다면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된 조건을 내세우 는 건 아닌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고등학교 때, 공 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고, 인간성도 좋았던 동창이 없 었던 건 아니지만 전교 통틀어 한두 명 정도 기억되는 걸 로 보아 지극히 낮은 확률이다. 상위 대학을 가기 위해선 죽어라 머리 처박고 공부했어야 했고, 유명한 회사에 취 업하기 위해선 8초 내에 선택받을 수 있는 스펙을 쌓아 야 하며, 차별성을 갖고 튀어야 한다. 리더십이란 것이‘사 람을 좋아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요즘 같은 분 위기에서 리더십을 갖춘 인재를 찾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자기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하기도 어려운데, 타인에 대 한 관심과‘우리’에 대한 진지한 인식을 갖는 것은‘미션 임파서블 2’다. 우리 기업 인재상에는 모순된 조건은 없 는지 현실적으로 분석해야 하겠다. 혹시 청년 같은 저돌성 과 연로자의 원숙한 인격을 겸비한 인재를 바라고 있지는 않나?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을 갖추면서, 박지성 선수같 이 주변을 챙기는 협조적인 인재를 바라지는 않을까?
그렇게 리더가 된다
채용 전문가들의 공통 사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 면, 첫째로 어떤 사람인지 느껴지는 사람을 선발한다. 페 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다. 아주 오래전 로마 시절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는데, 바로 이 가면이 페르소나라고 불려졌다. 가면을 쓴 사람 을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마치 배우가 페르소나를 뒤집 어쓰고 연기하듯이 제 수준에서 잘 파악이 안 되는 사람 은 훌륭한 역량을 갖췄다 할지라도 끝내 채용을 하기 어렵다.
단점이 많아도 단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후보자에 높 은 신뢰가 가는 건, 누구나 맨얼굴이 부끄럽고 혹여 손해 볼까봐 드러내기 두려운 데도 상대를 신뢰하여 친절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보자나 취준생에게도 면접 의 방법을 설명할 때 자신을 솔직히 보여주라고 한다.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정정당당한 건데, 더 좋은 사람으 로 보이려고 애쓰면 가면을 쓴 것처럼 또는 보톡스 시술 받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둘째로 피드백의 일관성이다. 논어에서도 문자보다 쇄소응대(灑掃應對 :청소와 응대)를 강조했듯이 조직(회사) 은 보고와 피드백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진 공간이다. 혹자 는 피드백의 속도와 이행여부로 판단한다고 하지만, 조금 은 다른 면에서 사람을 바라볼 수도 있다. 헤드헌터의 역 할은 매우 필요할 때가 있고, 전혀 무용할 때가 있다. 어제 까진 관심 없는‘듣보잡’이다가도 갑자기 오늘 도움이 절 실히 필요한‘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이 헤드헌터라는 직 업의 특성이다. 그래서 더욱, 언제나 편차 없는 정성을 담 아 피드백을 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간다. 평소엔 문자 메 시지에 관해 간단한 답장조차 없고, 메일을 열어 보지도 않다가 필요할 땐 채권자가 독촉하듯 심야에도 전화를 여 러 번하는 사람을 접하면, 한결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지 믿기 어려울 때가 있다. 혹시라도 상사에겐 보고를 잘하 나, 팀원들에겐 피드백이 없는 팀장이 되진 않을까 하는 기우를 지우기 어렵다.
셋째로 시니어 이상을 추천할 땐, 좋은 아빠(엄마)가 되 기 위해 노력하는 지를 묻는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세 자녀를 키우는 아빠로서“좋은 아빠란 하루하루를 아이 들과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가장이나 워킹맘으로는 매우 어려운 얘기다. 분명한 건, 좋은 리더가 좋은 부모이지 않을 순 있 어도, 좋은 부모는 반드시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아버지(부모)로 서 권능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 아버지(어 머니)도 성장한다. 올바로 사랑을 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어른이 된다. 핏줄이 애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에 관한 기억이 애정을 만들고 그렇게 부모가 되듯이 구성원들에 대한 인내와 이해가 쌓이면서 리더가 된다고 본다.
리콜의 경험
진짜 무능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 언제나 현명하고 올바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과도한 욕망 은 치명적인 약점과 동의어가 된다. 채용 컨설턴트는 사람 을 잘 못 볼 수 있다는 걸 항상 인정하고 책임져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예 노이로제가 될 정도이다. 그런 불안감 이 자기 확신을 잠식할 때 (직업이나 직장을 잃음으로 인 해) 설령 경제력이 상실되고, 자존감이 조각난다 할지라 도, 잘못된 판단과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채 용을 대하는 모든 사람과 기업이 가져야 할 태도인지 모른다.
앞서 소개한 페르난데즈-아라오즈는《어떻게 최고의 인재를 얻을까(2015年)》라는 저서에서 인재 채용담당자 의 책임을 강조한다. 채용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을 물으라는 것인데, 인하우스 구조상 불편한 얘기다. 채용 업무를 하면서 리콜(?)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후보 자의 미세한 거짓말이 공식적으로 귀책사유가 될 수는 없 었지만, 채용을 결정했던 스타트업 대표이사는 한 동안 일 을 해본 후 더는 같이 근무할 수 없는 팀장 인재상이기에 (필자에게) 결자해지를 여러 번 제안했다. 여러 손실과 후 유증이 발생했지만, 결국 채용을 리콜(!)시켰다. 경험에 관 한 반성으로 발전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복기해 봐도 과거 시점으로 돌아갔을 때 그 후보자를 추천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결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만큼 사 람은 알기 어렵다는 명제를 되뇌게 된다.
최근 (선의의) 집단 추천 방식이라는 새로운 써치펌의 모델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은‘헤드헌팅 컨설턴트’대 신‘매칭 컨설턴트’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얼핏 결혼 정보 회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표현이다. 지 구의 80억 인구는 모두 80억 가지의 개별적 개성을 지닌 귀한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별과 인종과 민족과 국가와 종교 와 학력 등의 편견을 지우기 힘들다. 일반적인 틀로 재단 할 수 없는 독특한 잠재력을, 짧은 시간 내에 판단하는 것 은 (혈액형 성격 분류를 신봉하여) 특정 혈액형의 지원자 이력서를 읽지도 않고, 휴지통에 넣는 것만큼이나 허점투 성이라는 것을 점점 알게 된다. 결국, 좋은 사람을 채용하 는 것이 아니라 나(기업 및 조직)와 맞는(매칭 되는) 사람 을 선택한다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더크 존커 말대로 빅데이터를 접목한 크런처 같은 스타 트업이 활성화 된다면, 정말 AI가 직원을 뽑고 CEO도 육 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설령 곧 그런 날이 온다 해 도,“사람은 사람이 잘 본다”는 필자의 고정관념은 좀처 럼 변하기 힘들 것 같다. 여전히 인재를 선별하는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스페셜리스트의 전망을 밝게 보는 스티브 스타인 (글로벌 헤드헌팅 써치펌 DHR 인터내셔널) 아태 지역 대표의 의견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