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매번 작심삼일을 반복할까?“
박광오 차장은 정말 오랜만에 교육에 참여했다. 신입사원 연수와 대리 교육을 받은 이후 10년 가까이 못 들은 셈이다. 회장 비서실 수행비서 업무를 수행하거나 해외지사 파견 등등 업무 일정이 겹쳤던 탓이다. 그래서 거의 10년 만에 참여하는 차장 교육에 기대가 컸다.
2박 3일 과정 중 두 번째 날이 되었다. 강의 주제는 ‘당신 인생의 최고 경영자라 돼라’라는 제목이었고, 부제로 ‘셀프 리더십’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꽤 유명한 외부 강사가 시작하자마자 박 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차장님, 회의 사명과 비전 아세요?"
"고객을 위한 인간존중 및 가치경영, 그리고 고객을 선도하는 초일류 물류기업입니다."
주변의 동료들이 비서실 출신이라 다르다며 감탄했다. 강사는 빙그레 웃더니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그럼 차장님의 사명과 비전은 뭔가요?"
"네? 아…."
순간 박 차장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자신의 사명과 비전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강사는 박 차장을 잠시 쳐다보다가, 전체 교육생에게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정말 이상하죠? 회사의 사명과 비전, 목표는 모두 외우고 다니는데 정작 회사보다 중요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명과 비전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 방향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겁니다."
박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사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스스로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인지 세 번째 시간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미션과 비전을 적었다.
목표를 적어야 하는 시간에 강사는 갑자기 웬 만다라트를 화면으로 보아주었다. 원래 만다라트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때 활용되던 도구인데, 어느새부턴가 자기 목표를 작성할 때 활용된다고 했다. 이 도구를 잘 활용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 선수라고 한다.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트
박 차장도 자신만의 만다라트를 그렸다. 가장 가운데에 ‘행복한 박광오 차장’이라고 적었다. 주변 8개의 칸에는 각각 ‘돈, 건강, 지식, 가정, 친구 관계, 회사 업무, 미래 준비’ 등을 적었다. 총 81개의 칸을 채우는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채웠다. 마음이 매우 뿌듯했다.
그래! 이제 계획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지!
두 달 후, 박 차장은 책꽂이 뒤쪽으로 떨어진 만다라트를 발견했다. 책상 앞에 붙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더니, 이런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박 차장은 만다라트를 접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그때 세웠던 목표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1. 자기 조절과 의지력
셀프 리더십 교육을 받거나 신년을 맞이할 때, 그 이외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우리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금연, 독서, 다이어트, 운동, 글쓰기, 영어 공부 등.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지가 수그러든다. 이번에는 분명 다를 것이라 믿고 시작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계획을 빼곡히 적었던 다이어리만 남는다.
우리는 왜 계획을 세우면 실패할까? 왜 이렇게 의지력이 약한 것일까?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책 『의지력의 재발견』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힘의 핵심은 ‘자기 조절력(Self regulation)’이며, 이 자기 조절력의 원천이 되는 게 바로 ‘의지력(Will power)’이라는 것이다.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 1953~). 미국의 심리학자로 자아, 자유 의지, 의지력 등 광범위한 주제를 연구했다.
의지력의 핵심은 생각하는 것에 몰입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제하고, 긍정 정서를 유지하고, 목표를 방해하는 유혹에 저항하며, 현재의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등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을하는 것이다.
의지력의 원천은 에너지, 즉 포도당(Glucose)이다. 이 포도당은 여러 곳에서 개별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 총체적인 하나의 원천으로서 작동한다. 음식, 휴식 등을 통해 충전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소진되는데, 정신적 활동이 활발할수록 소진의 속도가 빨라진다. 그래서 판단, 의사 결정, 인내 등등을 할 때 급격히 소모된다.
에너지인 포도당이 모두 소진된 상태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라고 한다. 이 상태가 되면 우리는 모든 상황에 굴복하고 만다. 생각을 조절할 수 없고, 원치 않는 감정 상태를 벗어날 수 없으며, 유혹의 충동을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다음 날 분명 후회할 행동을 하게 된다.
2. 목표 간의 Trade-off
우리는 목표를 너무 많이 세운다. 이것저것 조금씩 담고자 해서, 결과적으로 오늘 할 일만 열 개가 넘는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세 개만 추려도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다 잘할 수 없는 Trade-off 관계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다이어트를 목표로 세웠다. 뭐가 필요할까? 충동 조절일 것이다. 출근하면 곳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간식을 먹는다. 같이 먹자는 유혹이 올 때마다 먹고 싶은 충동을 제어해야 한다. 점심을 먹으러 가서도 절반만 먹고, 계속 먹고 싶어도 멈춰야 한다.
퇴근길에는 헬스장에 들린다.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운동을 하면서 땀을 빼면서 에너지를 소진한다. 튀김 가게의 냄새를 참아내면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아내와 애들이 된장찌개를 식탁에서 맛있게 먹고 있다. 거실에 TV가 켜져 있다. 짜증이 확 밀려온다.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은 왜 켜놓았는데? 전기세 누가 내는 거야! 이번 달 관리비가 얼마 나온 줄 알아? 왜 이렇게 절약을 못 하는 거야!
아이들은 어리둥절, 아내는 저 사람이 왜 저러지? 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 목표를 적은 다이어리를 본다. 다이어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올해의 목표 1번 다이어트, 2번 아내, 아이들과 화목한 가정 만들기.
3. 의지력 관리와 목표 달성
자기 조절력의 프로세스와 실행방식,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점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네 가지를 제안한다.
첫 번째, 의지력은 근육이다. 운동을 계속하면 근육량이 늘어나 지구력이 생기듯, 의지력도 충분한 훈련과 영양 섭취로 그 근육을 키울 수 있다. 포도당을 잘 유지하기 위해 천천히 흡수되는 음식을 섭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 좋은 컨디션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이 70년대의 고리타분한 표어 같지만, 실제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 될 것이다.
둘째, 계획은 유연하게 세우되 목표는 최소화하자. 특히 다이어트와 금연처럼 상충되는 목표는 피하고, 한 번에 하나씩 생각하는 게 좋다. 꼼꼼하게 매일 해야 할 리스트를 정하기보다는, 느슨하고 여유 있는 장기 목표를 세워서 오늘 못해도 내일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게 좋다.
또한 에너지를 최소화하도록 습관화해야 한다. 의지력은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마주치는 상황마다 고민하고 결정하면 그만큼 의지력이 소진되어서, 정말로 필요할 때 쓸 수 없다. 따라서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자명종이 6시에 울린다. 오늘 운동을 해야 한다. 시계를 보면서 고민한다. 나갈까? 좀 더 잘까? 그래도 나가야지… 아냐, 내일부터…
이렇게 고민하다 보면 이미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운동을 나간다 해도 이후 일정이 위험하다. 그래서 자명종이 울리면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서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판단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오바마는 일생을 살면서 자신이 입을 옷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왜? 신경 쓰고 결정할 일이 너무 많은데, ‘뭘 입을까’까지 고민하면 그만큼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유혹이 없는 곳으로만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좋다. 금연을 위한 제도적 장치(금연장소 확대, 흡연 시 벌금, 담배 광고 금지) 등이 많은 금연자를 만들어 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셋째, 자기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fMRI가 발달된 이후 뇌 연구를 통해 인슐라(insula)라는 부위를 찾아냈다. 뇌가 민감하게 반응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주로 기분 나쁜 일에 대해 듣거나, 구두쇠가 물건을 살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자기 모니터링의 순간에도 활성화된다. 카드 명세서를 받아 볼 때, 운동량이 기록된 스마트폰을 볼 때, 방 안에서 거울을 볼 때 등이 있었다.
사회심리학자 위클런드와 듀발은 사람들이 자아를 중립적인 형태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모습과 자신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의식은 자신을 ‘자기 자신이 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과 비교하도록 부추겨서 자기 조절을 돕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다양한 어플을 통해 시간을 사용한 내용, 음식 먹은 것들, 돈을 사용한 내역, 운동한 거리 등을 항상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목표 실행 방법이 될 것이다.
넷째, 단순하고 꾸준히 훈련하라. 위와 같은 세 가지를 하더라도 사람의 의지력은 떨어질 수 있다. 우리가 늘 좋은 환경에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영양도 충분히 섭취하고, 휴식도 취하고, 에너지 사용도 최소화하며, 자기 모니터링도 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기본적 여건이 안 될 경우를 생각하고 절제된 활동을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아프리카 탐험가 헨리 모턴 스탠리가 전염병이 창궐하고 동료들이 죽어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꾸준히 했던 것이, 매일매일 일어나서 수행하는 면도와 글 쓰는 일이었던 것처럼. 결국 그는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아프리카를 유럽에 알릴 수 있었다.
이제 박광오 차장은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자기관리 어플리케이션에 입력한다. 시간을 사용한 내역을 확인한 후, 낭비 요인을 찾아서 조정한다. 미리 계획을 세운 뒤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자기 모니터링을 통해 발견한 내용을 수정하는 방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력이 부족할까?”라면서 매번 자책하던 버릇도 없어졌다. 대신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을 애용한다. 예를 들어 새벽에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시간을 확인한 뒤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는 대신, 무조건 일어나 끌 수밖에 없는 위치에 두었다. 알람을 끄면 시간을 보지 않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바로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인터넷을 열지 않기 위해 와이파이도 비행 모드로 설정해 두었다). 이렇게 해서 쌓아온 글이 벌써 꽤 모였다.
얼마 전부터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 그가 쓰고 있는 시리즈인 〈회장님만 아시는 비서실의 스마트워크〉는 벌써 꽤 많은 직장인 독자들이 구독하고 있다. 그의 목표인 ‘내 이름으로 된 책 출간하기’가 머지않았다.
원문: 직장인을 위한 심리셰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