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끈적한 여름에 지쳐있다 보면 어느새 바로 코앞에 와 있는 게 한국의 가을인 듯 싶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것을 넘어, 이제 한낮의 햇빛도 많이 얇아졌다.
올해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쓸쓸해지는 시기이다. 2009년을 시작하며 막연히, 또는 구체적으로 계획했던 일들이 얼마나 이뤄졌나 생각해보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매년 새해가 오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지난 달을 반성하며 또 계획을 세우고, 사람은 항상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동물인 것 같다.
문제는 때로 변화를 발전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름을 밀어내고 어느덧 찾아온 가을이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서 오는 변화인 것처럼, 우리 삶에서 찾아오는 변화들을 발전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변화로 인해 실상은 후퇴하고 있음에도 발전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사실 ‘변화’ 또는 ‘발전’이 일어나는 순간, 이것이 전자인지 후자인지 알아내기가 항상 수월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A에서 B부서로의 이동이, A에서 B직장으로의 이직이, A라는 직업에서 B라는 직업으로의 전환이 내가 발전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인지, 발전과는 무관한 단순한 변화인지, 최악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무너트릴 수도 있는 행보인지 바로 알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정의 순간 우리는 항상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아닐까? 대체 어떤 기준으로 봐야만, downward가 아닌 upward의 길로 가는 선택인지 알 수 있을까? 단지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맞이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기준으로 결정해야 할까?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안과 상황에 따라 결정의 잣대는 달라지겠지만, 모든 결정들이 궁극적으로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함이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만 더 발전하기 위한, 행복해지기 위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면, A에서 B라는 직장으로의 이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전적인 보상은 보장하지만, 개인적인 시간이 극도로 제한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보자. B로의 행보가 어떤 사람에게는 발전, 행복으로의 행보겠지만, 장시간 근무, 개인 시간의 부재를 몹시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이런 변화는 맞는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아무리 그래도 2-3년 꾹 참고 일하지 못할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분명 이런 조건을 못 견뎌하고, 불행해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NO라고 얘기하는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내린 맞는 결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발전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히 알게 되지도 않으며, 어느 순간 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갸우뚱해진다. 어느 심리학자가 말했다. “이른 새벽 세상이 잠들어 있는 순간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유를 알 때, 나는 어떤 사람인지, 행복해지는 길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말이다. 꼭 새벽이 아니더라도, 날씨 좋은 이 가을에 점심 이후 회사 주변을 돌며, 퇴근 후 집으로 걸어가며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한 가을을 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