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회사의 직원들에 대한 로열티도, 직장인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도 모두 사라졌다. 언제든 회사가 어려우면 명예퇴직의 대상일 될 수 있다는 것과, 처우가 조금 나은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면 언제든 현 직장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요즘 직장인들의 심정인 듯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헤드헌팅사에는 매주 1000통 가량의 이력서가 접수되고 있다. 이직을 원하는 사유도 다양하지만, 시니어 직장인의 이력서도 그 중 상당수다.
이런 현실에도 여전히 "회사가 붙잡는 인재"는 존재한다. 이직 할 회사보다 나은 처우 등을 제시하며(counter offer) 이직을 만류하는 인재가 있다. 이직할 직장과 현 직장과의 처우를 비교하며,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인재이다. 어떻게 이들은 회사가 붙잡는 인재가 되었을까.
차별화된 역량 ?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화학 엔지니어!
A씨는 외국계 화학회사에 엔지니어로 입사하여 미국 본사 생산 제품을 한국 공장으로 이전하는 문제 및 품질 테스트, 국내 상품 등록 등을 본사와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성사시켰다. 경력 8년 차에 외국계 화학회사로 15%의 연봉인상 제안과 함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A씨의 회사에서는 연봉 20%인상과 MBA진학 전액 지원의 카운터오퍼(counteroffer)를 제안했고 A씨의 수락으로 그는 이직을 포기하고 현 직장에 계속 근무하고 있다.
A씨는 화학계 엔지니어로서는 드물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 본사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해 업무를 신속하고 원활하게 진행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인재였다. 회사는 A씨의 대체인력을 구인하고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매력적인 처우를 제시해 그를 잡았다.
기업 법무팀에 근무하던 B씨는 유창한 영어실력과 리더쉽등 본연의 업무영역인 외에도 다양한 역량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계열사에 비해 낮은 현재 처우에 불만을 가지고 이직을 희망했고, 헤드헌터의 제안을 받아 처우가 좋은 다른 그룹사로 이직을 확정 지었다. 하지만, 현직장에서는 B씨의 퇴직을 만류했고, B씨는 처우가 나은 다른 계열사로 이동을 전제로 현직장에 남기로 결심했다.
특이한 점은 A씨나 B씨는 우리가 흔히 아는 고스펙의 명문대 출신 직장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A씨와 B씨는 적극적으로 주어진 업무에 책임을 다하는 리더쉽이 강한 스타일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업무 역량 이외에 뛰어난 외국어 능력을 겸비해, 혼자서 여러 사람의 몫을 해냈던 인재였다. 영어가 능숙한 법무인이나 영어가 능숙한 화학계열 엔지니어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영어 독해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회화나 작문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법무인이나 엔지니어는 발굴도 쉽지 않고, 설령 발굴한다 하더라도 스카우트에 만만찮은 비용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기업들은 기회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인재를 잡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핵심인재로의 성장
교육기업에 오래 근무했던 C씨는 중소 교육기업으로 1년 전 이직했다. 교육에 대한 소신이 있었던 C씨는 이직한 곳이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기업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에 결심한 이직이었다. 그러나, 1년을 보냈지만,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교육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영 마땅치 않아, C씨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살릴 수 있는 곳으로 또 다른 이직을 준비했다. 회사는 C씨의 사직을 극구 만류하며, 그에게 수익을 위한 사업이 아닌 진정한 교육을 위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를 회유했다. C씨는 상당한 금액의 연봉인상 제안을 수락하고 회사에 잔류했다.
C씨의 경우, 개인의 커리어 개발로 본다면 이직을 하는 것이 옮은 선택이었다. C씨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보다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사업부로의 이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C씨는 현재 회사와의 신뢰를 저버리지 못하고, 회사의 발전전략이 자신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그 핵심에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을 과감하게 떠안고, 남아있기를 결심했다. 개인의 발전 보다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전적 이익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회사와의 신의를 생각해 잔류를 결심했다.
회사가 붙잡는 인재의 공통된 특징은 약 경력 8~12년 차인 과장, 차장(혹은 팀장)급이 대부분으로, 경력직 채용이 가장 많은 직급과 일맥 상통한다. 다시 말해 조직에서 실무 책임자로 가장 효율적인 업무효과를 내는 직급의 인재들이다. 앞에 언급한 사례는 모두 30대 중반 경력 8년 차 정도의 인재였다는 점도 그렇다.
또 다른 특징은 앞에 언급한 사례가 모두 평판이 좋은 인재였다는 점이다. 평판은 단순히 업무역량이 뛰어나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조직내에서 융화를 잘하고 상하관계를 잘 조절하여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인재를 말한다. 앞선 사례의 인재들은 모두 조직내에서 좋은 평판과 리더쉽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은 모두 고스펙의 인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례는 대기업, 중견기업, 외국계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췌했는데, 인재는 모두 명문대 출신이 아닌 수도권 대학 출신으로, 자신의 노력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기회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필요해서 기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나를 필요로 하도록 끊임없이 역량을 개발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