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일요일 오후, 출근 걱정으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해지기 시작한다면,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서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면,
회사의 소모품으로 하루하루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면,
월급은 그저 통장을 스쳐갈 뿐, 순식간에 텅 비어버리는 통장 잔고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심각하게 이직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른을 코 앞에 두고 마냥 휘청거리기만 할 수는 없는 지금,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것도 없는데, 그저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사표를 내고 떠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바늘구멍보다도 좁다는 취업 관문을 뚫고 어렵게 들어온 회사가 아니던가!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년생이라면, 이직을 결정하기에 앞서 다음의 사항을 충분히 고려해보아야 한다. 사표는 마지막 순간에 내밀어야 하는 카드라는 것을 명심하라.
첫째. 이직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이직의 핵심은 현재의 생활이 얼마나 불만족스러운가가 아니라, 새로운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와 어떤 장기적인 비전이 있는가에 달려있다. 업무에 대한 적합성이나 커리어의 분명한 목적 없이, 상사와의 잦은 트러블로 인해 홧김에 사표를 내고,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지 좋다”란 생각으로 취업사이트를 기웃거리며, 마구잡이로 이력서를 보내어 충동적으로 회사를 옮기려는 행동은 무척 어리석은 일이다. 앞으로의 목표가 뚜렷하게 서 있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좋은 기업에 가더라도 대개 3개월쯤 지나면 회사에 대한 불만은 생겨날 것이고, 또 다시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가 발목을 잡게 될 것이며, 몇몇을 제외하고는 마음이 맞지 않는 회사 동료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곤욕스러워질 테니 말이다. 이직은 현재로부터의 탈출이 아닌, 미래를 향한 도전을 위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100% 만족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현상은, 커리어에서도 존재한다. 오랜만에 나간 대학동창모임, 죽도록 일하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것도 서러운데, 잘 나가는 친구 K는 이번에 연봉을 많이 올려서 누구나 다 아는 유명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단다. 갑자기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연봉은 그 사람의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라는데, 내 몸값이 겨우 이만큼인가?” 싶어 애꿎은 소주잔만 연신 들이키다가 씁쓸하게 자리를 뜬다. 그러나 어쩌면 친구 K는 그 연봉에 준하는 엄청난 업무강도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필히 그럴 것이다. 회사의 규모와 네임밸류, 연봉, 복리후생, 조직문화, 출퇴근 거리, 정시 퇴근 등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회사는 없다.
명함에 새겨진 그럴듯한 기업명과 고소득 연봉을 원한다면, 업무강도와 스트레스가 높더라도 그만큼의 대우가 보장되는 회사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고, Work & Life의 균형을 원한다면, 처우수준과 규모가 다소 작더라도,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약하고 직원들의 삶을 배려해주는 문화를 지닌 회사를 택하면 되는 것이다. 더 높은 직급의 명함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두 배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니까.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어려운 법,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또한 선택에 대한 만족과 후회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셋째. 장기적인 커리어에 대한 그림을 그려라.
필자가 헤드헌터로 일하며,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연차에 비해 이직 횟수가 잦은 후보자들의 이력서를 받아볼 때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어렵사리 입사한 회사에서 주어지는 단순업무에 대한 실망, 업무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처우수준, 비전 부재, 원하지 않는 상사스타일, 새로운 업무에 대한 호기심 등 수 많은 이유가 그 원인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직장인의 삶을 꿈꾸며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온 첫 직장에서, 상상과는 무척 다른 현실에 낙담하며 “이러려고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을 졸업한 게 아닌데…” 란 생각에 충동적으로 이직을 고려하는 모습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제 겨우 1~2년 차 밖에 되지 않은 신입사원에게 할당되는 업무의 영역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또한 단순업무라고 매 사에 일을 건성으로 처리하는 직원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겼을 때, 상사의 입장에서 그 직원이 과연 잘 해낼 거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회사의 어떤 업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단순한 업무일지라도 다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신이 생각하는 단순업무라는 것도 회사생활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기업인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현대그룹의 故정주영회장도 단순 심부름꾼으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20대 중 후반에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허황된 욕심이다. 늘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메뚜기처럼 쉴 새 없이 회사를 옮겨 다니는 사람은,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의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일단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자. 기회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에게 이직이라는 유혹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버티는 것만이 최선일 때도 있다. 지나고 나면, 힘겨운 시간을 잘 견디어 낸 경험들이 스스로를 한 층 더 성장시켜 주었음을 깨닫는 선물 같은 순간이 오지 않던가?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도, 억울해하지도 말자. 치열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젊음의 특권이다.
또한 이직에 대한 확신이 섰다면, 바라건대 연봉의 액수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하드 트레이닝 시켜줄 수 있는 곳으로 용감하게 뛰어드는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애써 서두를 필요는 없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면, 삶은 보다 의미 있는 현재들로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