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재주는 위대하지만, 마무리 짓는 재주는 더욱 위대하다 - h.w. 롱펠로
헤드헌터를 하다 보면 이직함에 있어서 이직의 시기를 조율하는데 애로 사항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최근 한 후보자가 본인을 통해 이직을 확정하고 이직 시기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현재 회사에서는 count offer를 제공하면서 잔류할 것을 설득하였고, 이직 회사에서는 하루라도 일찍 출근하기를 희망하는 상황에서 후보자가 많이 힘들어하는 case가 있었다. 결국 현 직장에서 설득 기간 1개월, 인수인계 기간 1개월을 소요한 후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직의 기쁨과 완성도를 더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기 전 체크해야 할 사항이 있는지 몇 가지 이직의 기술을 살펴보려 한다.
사직서를 던질 때도, 예의라는 게 있다?
채용한 회사에서 합격자를 빨리 데리고 오려는 회사들의 요구를 접할 때가 있다. 물론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인수인계 기간이 길어질수록 변수는 늘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직하려는 인재가 현재 몸담은 직장에서 충실히 생활했고, 원만한 관계를 형성했다면 그냥 쿨하게 보내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리텐션(Retention)을 위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고, 인정에 호소할 수도 있다. 더욱이 핵심인재여서 회사 비용으로 많은 교육을 받았고, 지금 TFTeam 소속으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면, 이번 주까지만 일하고 떠난다고 말하는 건 한국 기업 문화에선 "배신", 그 자체다. 경력사원인데, 메일로 사직 의사를 표현하고 PC 폴더 내에 간단한 인수인계 자료를 남기고 이직을 하려는 후보자를 만나면, 당황스럽다. 그렇다. 사직서를 제출할 때도, 이직을 할 때도 우리들의 정서와 상식에 부합하는 암묵적인 예의라는 게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리 새로운 직장에서 인재에 목말라 하고, 헤드헌터가 빠른 결정과 이동을 종용한다 해도, 조밀한 직장인 네트워크 내에서 그동안 쌓아온 "신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건 위험천만이다. 죄 중에 가장 무고하나 지울 수 없는 죄가 "괘씸죄"라는 말이 있듯이, 떠나는 그 순간까지 현 직장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의 도리라 하겠다.
애티튜드 (Attitude) : 사직서를 꺼내는 모습이 곧 진심을 좌우한다
일단 새로운 회사의 합격 통보를 헤드헌터로부터 듣는 순간, 마음은 새로운 여행을 갈 준비를 하게 된다. 자연스레 마음이 뜨면 일에 집중을 하기 어렵게 된다. 그동안 정들었지만, 또 지긋하기도 했던 현재의 자리와 업무를 뒤로 한 채 떠난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는 알리고 싶은 맘이 드는 건 당연하다. 상사에게 말하기는 뭐 하니, 가까운 동료나 평소 자신을 따르던 후배에게 암시와 복선으로 향후 벌어질 일들을 티저 광고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자신을 꽤 능력있게 보는 부러운 시선을 잠깐 즐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사내 국정원 요원 같은 직원들과 안테나를 통해서, 직속 상사에게 전해지는 순간, 그 상사는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과 "괘씸함"이 들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설령 그 상사가 그동안 수많은 태클과 질책을 일삼았다고 하더라도 상사 입장에선 후배가 잘 성장하여 팀과 회사의 기둥이 되라는 일종의 훈육 같은 거였을 거다. 그러니 그 상사 입장에선 떠나는 팀원이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직원이고, "검은 머리 짐승"이 되는 거다.
그 분노감에 팀 리더 또는 인사부서에서 새롭게 이직하려는 직장 인사파트에 전화를 걸어 "고춧가루"를 뿌려서 이직을 못하게 한 경우도 보았고, 이직은 했지만, 주홍글씨를 낙인 받고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을 어렵게 한 상황도 접했다. 그러니, 이직이 최종적으로 명확히 확정되면, (직속) 상사에게 가장 먼저 예의 있게 설명하고 "통보"가 아닌 "상의"를 하는 형식으로 조심스레 말하는 게 좋다. 설령 더 좋은 처우를 받고 더 전도 유망한 회사를 간다 하더라도 다시는 지금의 상사같이 좋은 분을 만나긴 어렵다는 분위기로 "죽을 죄"라도 지은 표정을 짓는 게 좋다. 단둘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거나, 커피라도 마시면서 말하면 더 좋다. 다만, 그렇다고 술자리까지는 곤란하다. 괜히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술까지 곁들인다면,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으니 과유불급하지 말길 바란다.
유종의 미 : 아름다운 자는 떠날 때도 깔끔하게 해야 한다.
당장 낼모레 문 닫을 회사나 지금 불법적인 업무를 나에게 강요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회사를 옮길 때는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인수인계를 한다는 가정 하에 이직 스케쥴링을 해야 한다. 보통의 회사에서 사규로 인수인계 기간을 "1개월"로 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사직서를 내는 순간, 누구도 현재의 직장에서 인수인계를 성실히 하는 것도, 웃는 낯으로 회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는 것도 힘들다. 그러니까 더욱 유종의 미는 가치가 있는 거다. 왜냐면 갑작스러운 퇴사는 남은 동료, 팀원들, 팀장에게 "시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떠나는 선배가 업무 인수인계를 확실히 하지 않아서 몇 달을, 심지어 몇 년 후에도 지뢰처럼 문제의 소용돌이에 빠진 경험이 있지 않았나 돌이켜 보라. 인수인계를 확실히 받아도 떠난 자의 업무를 껴안은 사람은 고생스러울 진대, 하물며 몇 년간 익숙한 업무를 며칠에 걸쳐 대략 설명하고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인간성을 의심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 떠날 때의 모습이 곧 그 회사에서 갖게 될 평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특히 떠나는 입장이니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다며 회사 게시판이나 메일을 통해 회사에 대한 비판과 상사에 대한 비난을 공식화하는 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만약 계속 몸담으려 하면서 앞선 행동을 하면, 때론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 될지 모르나, 떠나는 사람이 그런 언행을 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모습일 뿐이다. 그 어떤 멋진 문장으로 진정성을 담아서 "조직의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한다 해도, 떠나는 자의 넋두리이자 주제넘은 사족일 뿐이다. 함께 계속 걷지 못하는 것에 미안함을 간직하고 조용히 떠나는 게 남아있는 자들의 집중력과 마음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매너이자 의리일 것이다.
아름다운 시작보다 아름다운 끝이 중요하다!
그동안 직장 생활을 얼마나 잘했는지, 떠날 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직자만 그동안 몸담은 조직과 상사나 동료에 불만이 있었던 게 아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퇴사 예정자는 더 이상 권위를 갖고 있는 선배도 아니고, 우정을 유지해야 할 동료도 아니며, 애정 어리게 케어해주어야 할 후배도 아니다. 심지어 다시 볼 일 없는 "타인"일 수 있기에 그동안 잘못했던 것들이 봇물 터지듯 이슈화될 수도 있다. 심지어 그동안 진척되지 않았거나 잘 안된 일들의 원인을 "이직자"가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졸지에 억울한 비련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항변을 하고 싶은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루키에 해당하는 2년차 사원이 퇴직을 코앞에 두고 과장급의 선배들에게 반말도 경어도 아닌 묘한 어미와 어투의 말을 섞어 쓰면서 수위를 넘나드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수평적 문화가 강조된다 해도, 한국 직장에선 나이와 경력이라는 엄격한 상하 기준이 있다. 마지막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호연지기"도, "분기탱천"도 아니고 그냥 철없는 "객기"일 뿐이다. 신입사원으로서 또는 처음 합류했을 때의 겸손하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직장인, 회사원으로서의 정도라 하겠다.
최근 경력사원이 이직을 할 때 최종 인터뷰 후 Reference를 하는 회사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어떻게 이직을 하느냐에 따라 평판 또한 달라질 것이다.
이직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새로운 곳에서 충분히 적응하고 잘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것은 현재의 직장과 동료, 선배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떠나는 순간까지, 그리고 떠난 후에도 한동안 그곳과 그들에게 감사함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그게 이직을 하기 전 우리가 알아야 할 시작이자 마지막이다.